최근 수정 시각 : 2024-01-26 12:37:30

쵸소카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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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소카베씨
파일:쵸소카베 가몬.png
<colbgcolor=#6a9b4e> 쵸소카베 가문의 가몬
동그라미에 일곱 괭이밥
丸に七つ片喰
본성 불명
하타씨(秦氏) 이미키류(忌寸流)(자칭)
가조 쵸소카베 요시토시(長宗我部能俊)
종별 무가(武家)
출신지 토사국 나가오카군 소카베향
(土佐国長岡郡宗我部郷)
근거지 토사국 나가오카군 오코 성
아가와군 우라도 성
지류
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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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구로씨(大黒氏)
나카시마씨(中島氏)
에무라씨(江村氏) 등
당주 제17대 쵸소카베 토모치카(長宗我部友親)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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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長宗我部

무로마치 시대의 쵸소카베 가문은 도사국 나가오카군(長岡郡)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으나 도사 출신이 아니었다. 쵸소카베 가문은 자신들의 원류가 진의 황제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

쵸소카베는 하타(秦)씨에서 유래했음을 자칭했는데, 실제로 모토치카는 서장을 작성할 때 미나모토, 타이라 같이 자신의 본성를 쓰는 곳에 하타(秦)라고 기입했다. 하타 가문은 하타 지카시(하타 노부토키)가 있다.[2]

하타(秦)씨가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헤이안 시대이며 하타 요시토시(秦能俊)라는 인물이 그 주인공이다. 요시토시는 선대가 하사받은 시나노의 땅에서 세력을 뻗치고 있었는데 1156년 호겐의 난(保元の乱)때 패배세력에 소속해있었기 때문에 토사로 도망쳐 왔다고 한다.[3] 그렇게 토사로 도망쳐온 요시토시는 토사에는 얼마 존재하지 않는 평야 지역이자 중심지역이나 다름없는 나가오카 군에 정착하게 되었고 자신의 성을 소카베(宗我部)로 바꿔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안가 옆동네 가미군(香美郡)에도 자신들의 성을 소카베라고 쓰는 일족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고 이들은 서로를 구분하기 위해 나가오카에 거주하는 소카베 일족을 쵸소카베(長宗我部), 카미에 거주하는 소카베 일족을 코소카베(香宗我部)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쵸소카베 일족은 코쿠분가와(国分川) 근처의 오코야마(岡豊山)에 성채를 쌓고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많은 수의 분가를 배출해냈다.

이렇게 쵸소카베 일족은 수년에 걸쳐 기반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에 성공하자 당시 이름을 날리던 아시카가 다카우지에게 종신 요청을 보내며 그의 산하로 들어가였다. 이윽고 남북조시대로 넘어가자 북조 세력에 속하여 아시카가 가문의 분가인 호소카와 가문의 아래에서 남조 세력과 전쟁을 벌여 군공을 올렸고 전쟁이 끝나자 호소카와 가문에 소속되어 영토를 가증받고 토사의 호족으로서 영토를 늘리는 데 성공한다.

이후에는 관백(関白) 이치죠 노리후사(一条教房)가 도사로 하향하자 머무를 거처를 마련해 주기도 했으며 가독 분쟁이 발생하여 오코 성에서 난리가 나는등의 일이 있었지만 이를 잘 정리하였고 이치죠 가문 등과 함께 도사 칠웅(土佐の七雄)이라 불리는 수준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하였다.[4]

이후의 행적은 쵸소카베 쿠니치카, 쵸소카베 모토치카, 쵸소카베 모리치카 문서 참조.


[1]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정말 진시황의 후손이 도래인으로서 일본으로 건너왔다는 이야기가 되며, 가감해서 들을 경우 쵸소카베 가문의 선조는 '중국계 도래인'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대체로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온 도도(藤堂) 가문 외에 포함된다. [2] 이 설에서 유래된 가몬이 이전에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 사용되어 유명해진 범선(帆懸船)이다. [3] 제설로 1221년의 죠큐의 난(承久の乱)이후로 도망쳐왔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4] 압도적인 이치죠 가문을 제외하고 이들의 생산력은 비등비등했는데 쵸소카베 가문은 최하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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