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인식(張仁植) |
일본식 성명 | 張本榮 |
이명 | 장만석(張萬石) |
생몰 | 1900년 11월 11일 ~ 1966년 11월 4일 |
출생지 |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인천리 |
사망지 | 충청남도 논산군 |
추서 | 대통령표창 |
장인식은 1900년 11월 11일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인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11월 25일 서울 관철동에서 이약한(李約翰)의 권유로 대한민국혈복단(血復團)에 가입, 서무부(庶務部) 서무원에 임명되었다. 그는 의친왕 이강 명의의 논고문(論告文) 3통과 선언서(宣言書), <경고 이천만동포(警告二千萬同胞)> 20매, 혈복단 행정조직선포문(行政組織宣布文), 서약서(誓約書), 경고서(警告書) 등의 문서를 교부받고 이를 충남 논산, 공주, 강경 등지에 배포하기로 했다. 그는 공주로 내려가서 영명학교 교사 이활란(李活蘭), 같은 학교 학생 유준석(柳俊錫)[1]·강윤(姜沇) 등에게 위의 문서들을 제시하며 독립만세 시위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0년 4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6년 11월 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장인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