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두량(張斗良) |
생몰 | 1895년 1월 2일 ~ 1954년 7월 |
출생지 | 함경북도 부령군 청암면 자작리 |
사망지 | 함경북도 부령군 |
추서 | 건국훈장 독립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두량은 1895년 1월 2일 함경북도 부령군 청암면 자작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장채남이 자신을 찾아와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선언서 인쇄를 부탁하자, 그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3월 24일 밤에 인쇄한 천여 매의 선언서를 청진부 신암동, 포항동 일대에 배포했다. 이후 3월 31일과 4월 1일 양일간에 걸쳐 발발한 청진부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으며, 이때 소요된 목면제의 태극기 제작비용 약 30원은 그를 비롯한 거사 주동자들이 각출한 성금으로 충당했다.이후 1920년 3월경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고 남지방회에 소속되어 화룡현 사백사 및 합화사 일대를 근거로 삼아 경호대원 겸 모연대원으로 활동하며 두만강 대안의 칠도구 서작동과 회령, 무산, 부령, 청진 등 함경도 일대를 전전하며 군인 소모와 군자금 수집에 주력했다. 그 결과 군자금 2천여원과 러시아 화폐 3천 루블을 모금하였으며, 칠도구 사백사 등지에 수 개의 국민회 지회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21년 1월 30일 회령에서 동지 4명과 함께 체포되었고, 그해 11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징역 11년 3개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1954년 7월에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장두량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