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자크 1세 드 샤반 Jacques Ier de Chabann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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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1400년 ~ 1453년 10월 20일 |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생텍쥐페리 레 로슈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누벨아키텐 커턴 | |
아버지 | 로베르 드 샤반 | |
어머니 | 할릭스 드 보르트 | |
형제 | 에티엔, 앙투안 | |
아내 | 안 드 로네, 안 드 리비외 | |
자녀 | 조프루아, 길베르 | |
직위 | 샤를뤼 르 파이유 영주, 프랑스의 그랜드마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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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 시기에 잉글랜드군에 맞섰다.2. 생애
1400년 프랑스 왕국 생텍쥐페리 레 로슈에서 샤를뤼 르 파이유 영주인 로베르 드 샤반과 피에르피트 성의 여주인인 할릭스 드 보르트의 세 아들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로베르는 유언장에 장남 에티엔 드 샤반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기로 했으며, 에티엔이 상속인 없이 죽을 경우 둘째 아들인 자크에게 넘긴다고 밝혔다. 1423년 형 에티엔과 함께 크라방 전투에 참전했고, 형이 이 전투에서 전사한 뒤 영지를 물려받았다.1425년 도팽 샤를의 시종이 되었고, 부르봉의 상원의원이 되었다. 1429년 오를레앙 공방전에서 참여해 잔 다르크의 부관으로서 활약해 승리에 기여했다. 1430년 콩피에뉴 공방전에 참여했으며, 1431년 코르베유 성을 공략하고 벵센을 함락했다. 1436년 생드니를 접수한 뒤 1436~1437년 코르베유 성과 벵센 숲의 총독을 맡았고, 1438년 브리콩트로베르 성의 총독을 맡았다. 1438년 2월 2일 툴루즈 총독을 맡았으며, 1440년 부르봉 공작 샤를 1세에 의해 샹텔의 영주이자 수비대장에 선임되었다. 이 시기에 부르봉 공작 샤를 1세가 프랑스 국왕 샤를 7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을 때 가담했다. 반란은 곧 진압되었지만, 샤를 7세는 그가 자신을 충실히 섬겼던 과거를 고려해 용서했다.
1449년 샤를 7세의 루앙 입성식에 참석했으며, 1450년 발로뉴와 캉 공방전에 참여했다. 1451년 가스코뉴 공략전에 참여해 블라예, 부르, 프롱샥 등지의 항복을 접수했고, 장 드 뒤누아가 보르도를 포위 공격했을 때 보병 1,500명을 지휘했으며, 1451년 6월 30일 뒤누아가 보르도에 입성했을 때 함께 했다. 이후 1451년 8월 21일 가스통 4세 푸아베른과 함께 바욘을 함락시켰다.
1452년 10월 잉글랜드 장군 존 탈보트가 보르도를 공략하자, 샤를 7세는 1453년 보르도를 탈환하기 위해 원정군을 파견했다. 그는 이 원정군에 가담하여 1453년 7월 17일 카스티용 전투에 참전해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상을 입었고, 10월 20일 누벨아키텐의 커턴에서 사망했다. 사후 리옹스에 있는 프란치스코회 수녀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안 드 로네(? ~ 1430)
- 안 드 리비외
- 조프루아 드 샤반(1433 ~ 1500): 샤토 드 라 팔리스 영주, 왕의 시종, 루에르그의 상원 의원. 프랑스 원수 자크 2세 드 샤반의 아버지.
- 길베르 드 샤반(1439 ~ 1495): 커턴 영주, 생 미셸 기사단 기사, 왕의 시종, 리무쟁 세네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