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후유 伊波普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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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6년(메이지9년) 3월 15일 류큐번 나하니시 |
사망 | 1947년(쇼와22년) 8월 13일 도쿄도 요도가와구 요도가와쵸 |
류큐번 나하니시 촌(現 오키나와현 나하시) 출신의 민속학자, 언어학자. 오키나와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당명(唐名)은 유페이위안(魚培元)이다. 중학교 시절에 교장배척운동에 연루되어 퇴학당하고 1896년에 도쿄로 상경하였다. 1906년 도쿄 제국대학 문학과 언어학 교수를 졸업하였다. 향토 연구를 목적으로 오키나와로 귀향하였으나, 오키나와의 요청으로 계몽 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그는 고향에서 류큐사 강연, 기독교 종교 강연, 교회 설립 등 다양한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에 다시 도쿄로 상경해 도쿄에서 연구 생활을 계속 하다가 1947년 8월 13일 도쿄도 요도가와구 요도가와쵸(現 도쿄도 신주쿠구 일대)에서 뇌출혈로 인한 사망을 맞이한다. 그는 일본과 류큐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는 일류동조론을 주장하며 남도방언사 (南島方言史攷) , 충승고(沖縄考), 류큐의 다섯 위인 (琉球の五偉人) , 오키나와 역사 이야기 (沖縄歴史物語) , 고유구 (古琉球) , 교정 오모로사우시[1] (校訂おもろさうし) , 다카시마 고의 류큐사(孤島苦の琉球史) 등의 책을 저술하였다. 1961년에 우라소에시 우라소에 성터 남면에 그의 묘지와 헌창비가 건립되었다.
[1]
오모로사우시란 류큐의 전통 가요인 '오모로 (おもろ) '를 모은 책으로, 1531년부터 1631년 사이에 류큐 왕실에 의해 편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