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인 李宗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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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c224,#db9e00> 출생 | 1556년 |
조선 전라도 나주목 남평군 (現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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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593년 (향년 37세) |
경상도 진주목
진주성 (現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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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인언(仁彦) |
본관 | 개성 이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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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무신.2. 생애
나주목 남평군 출신으로 이황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무인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1580년 무과에 급제해 1583년 니탕개의 난당시 경원군이 함락되자 토벌군을 이끌고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난이 진압된 이후로도 북방에서 공을 세웠다.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상우병사로 내려온 김성일 휘하에서 활동했으며 1593년 김해 부사로 임명되었다. 제2차 진주성 전투당시 병력을 이끌고 진주성으로 입성했다. 일부 비관론자들을 꾸짖고 진주성에서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하지만 전투를 치르며 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사천 현감 장윤과 절친이였던 황진역시 조총에 전사했다. 일본군은 귀갑차 등 여러 공성장비와 많은 병력으로 진주성에 총공격을 가했고 성문이 뚫리자 병력들을 이끌고 본인도 활을 쏘며 항전했으나 전사했다.[1]
사후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병마절도사로 추서되었으나 병조판서로 정정되었다. 위패는 진주에 세워진 충민사에 제향되었다.
[1]
선조실록, 난중잡록에는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고 나오지만 연려실기술에선 적 2명을 양 옆구리에 끼고"김해 부사 이종인이 오늘 여기에서 죽는다"라는 말을 외치고 남강에 투신했다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