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5f5f5,#2d2f34> 이내창
李來昌 | Lee Nae-Ch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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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2년 5월 11일 |
서울특별시 | |
사망 | 1989년 8월 15일 (향년 27세) |
전라남도 여천군 삼산면 거문도 유림해변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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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 불명 |
학력 |
중동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학과 |
직업 | 조각가, 학생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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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절절히 염원하며, 의혈중앙의 완전한 자치실현, 자주적 민주대학 건설의 선봉에 나서 싸울 의혈중앙대학교 총학생회 총학생회장 조소학과 4학년 이내창, 팔천 학우 여러분께 힘차게 인사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운동가이자
열사.2. 생애
1962년 서울특별시에서 포목점집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서울 청구초등학교와 대경중학교를 거쳐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동고 3학년 재학 중이던 1980년, 사회봉사 동아리 '정우회'에 가입하여 서울지역 고등학생 광주대학살 규탄대회 유인물을 작성하였으나 계획이 노출되어 7명의 친구들이 구속되는 사건을 겪었다. 이로 인한 죄책감은 이내창을 민주화운동에 더욱 열중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82년 인천대학교 미술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곧 휴학하고 입대, 1985년 제대했다. 제대 후 1986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학과에 입학하여 판화동아리 '새김', 학과 내 동아리 '민족미술연구회'를 창립, 그리고 1988년에는 '청년미술대학 여름한마당'을 개최하고 조소학과 학생회장에 당선되는 등 교내외의 민족미술운동을 주도했다. 이듬해인 1989년에는 마침내 중앙대학교 안성교정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는 데에 이르러,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의원이자 수원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중앙위원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내창은 아직도 학우들을 다 만나지 못했어요. 2학기 땐 침묵하는 학우들을 세 번씩 만나야겠어요라는 말을 할 정도로 학생운동에 열심이었으며, 평소 이중섭을 존경하는 미술학도이자 비록 늦깎이 대학생이었지만 학우들과 때로는 든든한 형이자 오빠로, 때로는 친근한 친구로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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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학생으로 재학 중이던 생전의 모습. |
3.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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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0월 6일 '전대협장'으로 치러진 고인의 장례행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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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 19일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제4기 전대협 출범식에 맞추어 거행된 이철규와의 영혼의형제 결연식. |
이내창 의문사 사건 문단 참조.
4. 중앙대학교 관련
중앙대학교 다빈치캠퍼스 중앙문화관과 공연영상관1관 사이에 석조반신상이 설립되어있다.5. 기타
이내창의 묘는 광주광역시의 망월묘지공원에 한동안 위치해있었으나 2014년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이천민주화운동기념묘역으로 이장되었다.6. 관련 사이트
이내창기념사업회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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