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 승수(承叟) / 회은(晦隱) |
본관 | 풍산 류씨[1] |
출생 | 1832년 6월 28일 |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풍남면 하회동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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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10년 10월 26일 |
경상북도 안동군 | |
상훈 | 건국훈장 독립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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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의 10대손이며, 정3품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유규(柳氵+奎)의 현손이다. 독립유공자 유신영은 그의 장남으로, 1919년 고종의 인산일(因山日)에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2. 생애
유도발은 1832년 6월 28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풍남면 하회동(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1840년( 헌종 6) 식년시 진사시에 3등 5위로 급제하여 종4품 고원군수를 역임한 아버지 유진휘(柳進徽)와 어머니 안동 김씨 김병룡(金炳龍)의 딸 사이의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효성이 지극했다고 하며,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여러번 이사를 하였는데, 경상북도 비안군 정북면 덕암리(현 의성군 신평면 덕봉리 덕암마을)에 이사한 뒤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다.그러던 1910년 8월 한일병합 소식을 접한 뒤 집을 헐고 안동의 옛 집으로 돌아가서 조상의 사당과 친우들과 자손들에게 영결을 고한 다음 절명시(絶命詩) 한 수(首)를 남기고 단식한 끝에 17일 만인 1910년 10월 2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유도발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