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31 18:23:17

윌리엄 2세 드 페러스

성명 윌리엄 2세 드 페러스
William II de Ferrers
생몰년도 미상 ~ 1247년 9월 22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미상
사망지 잉글랜드 왕국 더비 백작령
아버지 윌리엄 1세 드 페러스
어머니 시빌 드 브라오스
아내 체스터의 아그네스
자녀 윌리엄 3세, 토머스, 휴, 아그네스, 베르타, 로버트
직위 제4대 더비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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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남작 전쟁 시기에 존 왕 헨리 3세 부자를 따랐지만, 헨리 3세가 성인이 된 뒤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할 때 반발했다.

2. 생애

제3대 더비 백작(자칭) 윌리엄 1세 드 페러스와 제3대 브램버 남작이자 헤리퍼드셔 보안관인 윌리엄 드 브라오스의 딸 시빌의 아들이다. 조부 로버트 드 페러스는 스티븐 왕의 지지자로 활동하다가 1154년 헨리 2세에게 밉보여 더비 백작위를 박탈당했다. 아버지 윌리엄 1세는 더비 백작위를 되찾기 위해 헨리 2세의 아들들의 반란에 참여했지만, 반란이 진압된 뒤 여러 성을 잃었다. 이후 리처드 1세의 총애를 얻었으며, 제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가 1190년 아크레 공방전을 치르던 중 전사했다.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원정을 마치고 잉글랜드로 돌아온 후, 윌리엄 2세는 1194년 3월 28일 헌팅던 백작 데이비드 등과 함께 리처드 1세에게 반기를 든 존 왕자의 지지자들이 점유하던 노팅엄 성을 포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후 7주 동안 노팅엄셔와 더비셔의 보안관 직책을 역임헀다. 1199년 리처드 1세가 사망한 뒤 존 왕이 왕위에 오르자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는 존 왕으로부터 더비 백작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고, 애시본과 워크스워스 영지를 수여받는 대가로 연간 70파운드의 농장 임대료를 왕에게 바쳤다.

1213년 존 왕이 잉글랜드 왕국과 아일랜드 영지를 교황청에 봉헌했을 때, 그는 증인 중 한 명으로서 조약서에 서명했다. 1214년 왕을 대신해 연간 공물 1,000 마크를 교황에게 지불하는 계약서에 증인으로서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존 왕으로부터 호스턴 성을 수여받았으며, 1216년 피크 포레스트의 집행관이자 피크 성주로 선임되었다. 제1차 남작 전쟁 시기에 존 왕 헨리 3세 부자를 따랐으며, 1217년 링컨 전투에 참여해 반군 격파에 일조했다.

윌리엄 2세는 헨리 3세가 14번째 생일을 맞이할 때까지 볼소버, 피크 및 호스턴 성의 왕궁을 보유하는 걸 허락받았다. 1222년 헨리 3세가 14번째 생일을 맞이한 뒤, 그의 총신들은 세 왕궁을 회수하려 했지만 그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었다. 1227년, 그는 여러 귀족과 함께 헨리 3세를 압박해 삼림 헌장을 회복하게 했으며, 1237년에는 다른 두 대귀족과 함께 헨리 3세에게 마그나 카르타를 준수하라고 강요했다. 1232년 제4대 체스터 백작 라눌프 드 블론드빌이 사망한 뒤, 라눌프의 누이이자 그의 아내인 아그네스가 리블 강과 머지 강 사이에 있는 광대한 영지를 물려받으면서 그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다. 말년에 통풍에 시달렸고, 1247년 9월 22일에 사망했다. 사후 장남 윌리엄 3세가 제5대 더비 백작에 등극했고 아버지의 영지를 계승했다.

3. 가족

  • 체스터의 아그네스(? ~ 1247년 11월 2일): 체스터 백작 휴 드 퀘벌록의 딸.
    • 윌리엄 3세 드 페러스(? ~ 1254): 제5대 더비 백작.
    • 토머스 드 페러스(? ~ 1266년 이후): 기사.
    • 노샘프턴셔 버그브룩의 휴 드 페러스(? ~ 1257): 기사.
    • 아그네스 드 페러스: 웨스트모어랜드 남작이자 보안관 존 드 비퐁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