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上野原町일본 야마나시현 동부 지역에 있었던 정으로, 2005년 2월 13일에 미나미츠루군 아키야마무라와 합병되어 우에노하라시가 되었다.
2. 소개
군나이 지방에는 수많은 승석문 시대 유적이 분포되었지만, 카츠라 강이나 츠루 강변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유적들이 있었고 최근에는 개발로 인한 발견이 새로 잇따르고 있다. 승석문 시대 중반기를 절정에 달한 빠른 시기부터 유적이 발포되어 있지만 후반기 때 감소되었고, 야요 시대 이후에 있었던 유적들은 적었다.헤이안 시대 후반기 때 우에노하라를 중심으로 한 후루코리는 무사시 7당의 요코야마 가문으로부터 분출된 후루코리 가문의 지배가 실현되었고 카마쿠라 시대인 1213년에는 와다 전투에서 후루코리가문이 멸망해 버리자 가토 가문이 지배하였고 두 가문이 지배를 기점으로 한 저택 부지가 있다.
무로마치 시대인 1426년에는 카마쿠라 조정의 아시카가 모치우지에 의한 타케다 노부나가의 추격 침공을 받았고, 1478년에는 가토 가문이 나가오 카게하루의 난에 가담했기 때문에 오타 도칸의 침공을 받았다.
전국 시대 때는 사가미국의 고호죠 가문과 관계가 강해졌고 변화된 외교 관계로 인하여 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1530년에 야츠보자카에서 고호죠 가문과 군나이 지방을 지배한 오야마다 가문과 전투가 일어났고, 1554년 타케다 신겐의 딸이 고호죠 가문에게 출가를 할 때 이곳에서 넘겨받았다. 가토 가문은 쿠니나카 지방을 지배한 타케다 가문과 함께 국경 방위에 즈음했고, 1569년에는 타케다 가문이 사가미 침공에도 가담했다.
사이하라에는 타케다 가문의 일족인 사이하라타케다 가문[1]이 배치되어 있었고 같은 지역에서 자리를 잡은 이치노미야 신사는 이치노미야 아사마 신사를 권청한 신사였다.
오쿠누기 히노 촌락지 서쪽에 위치한 나가미네 성터는 중세 때 세워진 산성으로 일대에는 오오쿠라와 마키노 등 수많은 성터가 분포되어 있다. 특히 근세 시대에는 코슈 가도변을 따르는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무사시국 및 사가미국 방면에 갖춰진 국경 경비용 성곽이었다.
아사노 가문 시대였던 1594년에는 토지 검사가 진행되면서 마을은 16개로 성립되었다. 야무라 번 아키모토 가문에 들어섰을 때는 21개로 늘어났다. 근세 카이국에서 지역을 구분하는 쿠스지니령에서 모든 마을이 츠루군에 속했다. 1724년에는 카이 일국이 막부직할령이 되면서 우에노하라의 모든 마을이 영토가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남부 카츠라 강 및 나카마 강변을 따르는 코슈 가도가 정비되면서 우에노하라에는 역참 4곳이 설치되었다. 이로 인해 근소한 농업과 산림업 등의 생계를 꾸리는 것 외에 가도에서 수입을 벌거나 직물 생산을 중심으로 군나이 지방에서 특유한 형태가 되었다.
코슈 가도의 명소로 알려진 이누메 고개는 1830년부터 간행된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후가쿠 36경에 코슈이누메 고개, 1852년에 강행된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후지 36경에는 카이이누메 고개가 있다. 그러나 우타가와가 사망한 뒤에 강행한 후지 36경에서는 카이이누메 고개가 그려져 있다.
도로 정비로 교통 기점으로의 자리는 낮아졌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는 수도권에 편입되어 베드 타운화가 진행되었다.
[1]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카이국지에 따르면 사이하라에 거관이 있었으며 탄바저택이라고 칭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