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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랍어: عنيزة영어: Unaizah
사우디아라비아 중북부의 도시. 부라이다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얼진 오아시스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40만명으로, 부라이다와 함께 알카심의 양대 도시를 이룬다. 두 도시는 인구 백만 규모의 광역권을 이루고 있고, 연담 도시화가 진행 중이다. 지명인 우나이자는 아랍어로 검은 언덕을 뜻하는 아나즈[1]의 축소형이다.[2] 유서 깊은 역참 도시로, 19세기 초부터 알 술라임 가문이 통치하고 있다. 알 사우드 왕족들의 주지사와 시장을 맡고 있는 다른 사우디 도시들과 달리 우나이자는 사우드-살림 협정에 따라 토착 알 술라임 가문이 통치하고 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하단 역사 단락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오랜 역사에도 근대 시기 잦은 전쟁으로 유적은 거의 없고, 네지드 최대의 호수인 동쪽의 우슈지아 염호가 주요 볼거리이다.
2. 역사
6세기 시인 이므루 알 카이스가 언급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중세에는 이라크에서 메카로 향하는 성지순례 (핫즈) 길에 놓인 중간 기착지였고, 1685년 알 수바이 부족이 토후국을 세웠다. 와하비 전쟁 중인 1816년 이브라힘 파샤의 이집트 군이 점령하여 간접 지배하였다. 하지만 알 수바이 부족의 일파인 야흐야 빈 술라임이 1818년 현지인들을 규합하여 저항하였고, 마침내 1822년 친오스만 아미르 압둘라 알 자미를 죽이고 집권하였다. 이후 우나이자는 1830-34년, 1849-54년, 1891-1904년을 제외하고 야흐야의 부친 술라임의 후손들인 알 술라임 가문이 지배하고 있다.2.1. 알 술라임 가문
1830년 네지드 토후국 (2차 사우디 국가)의 투르키 빈 압둘라가 점령하여 아미르 야흐야 빈 술라임을 축출하였다. 다만 투르키가 세운 아미르들이 제대로 통치하지 못하자 1834년 야흐야가 복위하였다. 다만 그는 1841년 바카 전투에서 하일의 알 라시드 가문 (자발 샴마르)과 싸우다 전사하였고, 뒤를 이은 동생 압둘라 역시 1845년 같은 식으로 전사하였다. 뒤이은 다른 동생 이브라힘은 1847년 네지드의 파이살 빈 투르키에게 축출되었다. 파이살은 야흐야 형제의 먼 친척인 나시르 압둘라흐만을 아미르로 봉하였으나 1849년 그가 반란을 일으키자 축출하고 자신의 동생인 잘라위를 총독으로 봉하여 우나이자를 사우디 직할령으로 삼았다. 동시에 우나이자는 알 카심 지역의 주도가 되었다. 다만 1853년 주민들이 봉기하여 잘라위를 축출하며 재차 자립하였다. 이듬해 재차 우나이자를 점령한 파이살은 주민 반발을 무마하고자 야흐야의 아들 압둘라를 아미르로 봉하였다.압둘라는 사우디의 제후로써 1868년까지 장기 집권하며 일대는 안정을 되찾았다. 압둘라의 사후 계승한 아들 자밀 역시 장기 집권했으나 1891년
3. 갤러리
부라이다와 경쟁하는 대추야자 축제
우슈이자 염호
서쪽 30km 지점의 18-19세기 도시 유적인 알카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