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6:09

왕굉(부풍태수)

王宏
(? ~ 192)
1. 개요2. 생애3. 창작물에서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장문(長文)으로 왕윤의 형.

2. 생애

병주 태원군 기현 사람으로 어려서 웅대한 담력이 있어 융통성이 있으며, 홍농태수일 때 환관에게 직위를 사들인 일이 발생하면서 이를 조사해 2천 석의 관직에 이른 자라도 전부 잡아들여 수십 명을 처형했으며, 이로써 인근까지 위엄을 떨쳤다. 기주자사로 전임되자 사적인 편지는 쓰지 않아 호족들을 멀리해 빈객들이 왕독좌(王獨座)라 불렀다고 한다.

왕윤이 정권을 잡으면서 부풍태수로 전임되었다가 왕윤이 동탁의 부하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고 이각, 곽사 등이 병주에서 학살 행위를 한 일로 인해 그들에 대한 사면령을 거부하면서 양주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는데, 이각, 곽사 등이 군사를 일으켜 장안을 점령했다.

이각, 곽사는 송익과 부풍태수 왕굉을 두려워 해 왕윤을 죽이지 못했는데, 이각이 칙명으로 송익과 함께 부르자 자신들을 두려워 해 왕윤을 해치지 못한다면서 송익에게 가는 것을 말렸다. 그러나 송익이 왕명을 언급하면서 가려고 하자 동탁의 잔당 따위를 겁낸다면서 송익이 거병하면 산동의 제후들이 호응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송익이 조정으로 가자 독자 행동을 할 힘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가서 도착하자마자 하옥되었는데, 사례교위 호충과 틈이 있어 호충이 죽이려고 애썼다. 자신의 운수가 다하자 송익과 호충을 욕했으며, 192년 음력 6월 7일에 왕윤, 송익 등과 함께 처형당했다.

후한서의 왕윤전 끝 부분에 나오는 인물로 왕윤전만으로 그 관계를 알 수 없으며, 후한서에서 인용하는 사승의 후한서를 인용한 주석을 통해 왕윤의 형인 것으로 나온다.

3. 창작물에서

소설 삼국지 여포전에서는 기주목으로 정원을 지지했지만 여포가 정원을 패배해 자결하게 만들자 정원의 복수를 하기 위해 여포가 흑산적을 토벌하러 갈 때 척후와 간자를 보내 여포의 움직임을 파악했으며, 동탁이 장악한 조정으로부터 왕광을 치라는 조서를 받았다.

전풍을 모사로 등용했고 온회가 찾아와 정원 휘하였던 온서가 울화병으로 죽은 것을 듣고 크게 분노했으며, 온회, 학소, 학맹의 귀순을 받아들였다.

기주를 두고 원소와 다투다가 전풍의 진언을 듣자 그가 떠났으며, 원소와 싸움에서 패해 안량에게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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