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74년 10월에 일어난 대한민국 해병대 장병들이 선박 옹진호의 선장과 경찰공무원을 구타한 사건이다.2. 배경
1970년대에 백령도와 연평도는 교통 상황이 좋지 못했다. 날씨가 안 좋으면 배가 뜨지를 못 하고 1주일씩 미뤄지는 일이 빈번했다. 그리고 안보상 요충지이다 보니 민간 상선이 움직일 때도 해군 고속정의 호위를 받아야 했다.3. 전개
사건 당일에 해병대원 50명이 휴가를 나갈 상황이었다. 옹진호의 승선 정원은 300명이었는데, 민간인 200명과 해병대원 50명이 부두에서 대기 중이었다. 당시 부두에 있던 해병대원 중 최선임은 나중에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전도봉 대위였다.[1] 배에 타지 못 할 경우 1주일 뒤에나 휴가를 나갈 수 있었다.[2] 해병대원들의 신경이 곤두서자 전 대위는 선장과 치안을 맡은 경찰공무원을 만나 해병대원의 승선이 가능하냐고 물었고, 그들은 그렇다고 답했다.먼저 민간인들이 승선하고 해병대원들이 승선할 계획이었는데, 민간인이 탑승하자 선장은 배를 출항했다. 어렵게 얻은 휴가가 바람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해병들은 극도로 흥분했는데, 상선이 2km를 나가자 해군 고속정이 부두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배가 돌아오자 해병대원들은 배에 올라[3] 기물을 파손하고 선장 등 상선사관과 선원을 두들겨팼고 경찰도 폭행했다.[4]
해병대원들은 그들이 해병대원을 달갑지 않게 여겨 태우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4. 이후
현재는 악천후로 병들의 휴가가 줄어드는 일을 방지하고자 휴가 출발과 복귀를 인천광역시에 있는 도서 파견대에서 하고 있다. 휴가 하루 전날 배를 타고 인천에 도착한 후 하루 자고 다음날 아침에 휴가를 나간 후, 인천으로 휴가 복귀하고 다음날 아침에 배를 타고 부대로 가는 방식이다. 도서파견대를 오가는 시간, 날씨등의 이유로 파견대에서 대기하는 기간은 단순 부대이동으로 봐서 휴가기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백령도와 울릉도에 주둔 중인 공군도 이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연고지 부근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 공군의 경우 부두에 도착하여 시내버스만 타면 바로 집인 경우가 많아 출발할 때는 휴가 기간에서 까는 듯 하다.
[1]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의 그 사람이 맞다. 한번 짤리고(35기) 다시 재임관하여(38기) 장교생활을 하던중이었다. 그는 당시
중대장
보직을 마치고
해군본부로 전출되었는데, 기상 악화로 한 달째 나가지 못한 상태였다.
[2]
당시 해병대원들의 휴가는 군 생활 동안 24박 25일을 두 번 찢어서 나갈 수 있었다. 교육 수료 후 특박을 제외하면 첫 휴가와 말년휴가만 있었고, 그나마도 섬이라서 기한이 제한적이었다.
[3]
휴가자 외에도 휴가자들을 환송하러 나온 해병대 장병들도 따라갔다.
[4]
당연한 얘기지만 보통 이런 경우를 마주하면 화가나고 짜증이 날지언정 기물을 파손하고 사람을 폭행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해병대원들은 그런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행동들을 서슴없이 벌였다. 그것도 군인 신분으로 민간인들을 화가난다는 이유로 폭행한것이다. 얼마나 이들이 군기가 빠져있고 형편없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