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대
최고 라다 의장 올렉산드르 올렉산드로비치 모로즈 Олександр Олександрович Моро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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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66b6><colcolor=#fff> 국적 |
[[소련| ]][[틀:국기| ]][[틀:국기| ]] → [[우크라이나|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44년 2월 19일[1] ([age(1944-02-19)]세) |
소련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키예프주 부다[2] | |
학력 | 우크라이나 농업대학 (1965 / 엔지니어링) |
직업 | 교사, 기계공학자, 정치인 |
재임 기간 |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 |
1990년 2월 15일 ~ 2007년 11월 23일 | |
우크라이나 사회당 대표 | |
1991년 10월 26일 ~ 2012년 4월 | |
제3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장 | |
1994년 5월 18일 ~ 1998년 5월 12일 | |
제7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장 | |
2006년 7월 6일 ~ 2007년 11월 23일 | |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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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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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올렉산드르 모로즈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인으로,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장, 우크라이나 사회당 대표를 역임했다.2. 생애
1944년 2월 19일, 우크라이나 SSR 키예프주 부다에서 태어났다. 독소전쟁으로 인해 2월 29일 출생신고를 완료했다.1965년에 엔지니어링 전공으로 우크라이나 농업대학을 졸업했다. 1983년에 우크라이나 SSR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고등 정당 학교에서 정치학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교사와 엔지니어로 일했다.
1976년부터 우크라이나 SSR 공산당 키예프 지역위원회 농업부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 키예프 지역위원장, 우크라이나 SSR 중앙위원회 제1서기를 역임했고 1989년부터 키예프 지역위원회의 농업부 국장을 역임했다.
1990년에는 우크라이나의 인민 라다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모로즈는 인민 라다 내 보수파[3]인 공산당 239 그룹의 수장이 되었고, 1991년 우크라이나 SSR 공산당이 불법화되자 우크라이나 사회당을 창당했다.
1994년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또한 당 대표 올렉산드르 모로즈가 4년간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장 직을 맡았다.
199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현 대통령과 레오니드 쿠치마 현 총리 모두를 비판하면서 출마했다. 우크라이나 공산당 역시 모로즈 지지 선언을 했으나 선거 결과 3,466,541표(13.3%)를 득표해 3위로 낙선했다.
1996년 6월 28일, 최고 라다의 의장으로서 우크라이나 헌법을 채택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1998년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사회당-농민당 교섭단체를 이끌었다. 또한 2000년까지 최고 라다 내 농업 정책 및 토지 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2,969,896표(11.29%)를 득표하며 3위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10% 이상을 득표한 우크라이나 진보사회당의 나탈리야 비트렌코와 단일화했으면 2위인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페트로 시모넨코와 2위 싸움을 할 수 있었을 아쉬운 결과였다.
2001년, 최고 라다 회의 도중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 반정부 기자인 헤오르히 곤가제(Георгій Ґонґадзе, 1969–2000) 암살을 명령했다는 테이프를 공개했다.
2002년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선거에서 반 레오니드 쿠치마 캠페인으로 1,780,642표(6.87%)를 득표해 비례대표 20석, 지역구 3석을 획득했다. 이후 빅토르 유셴코의 우리의 우크라이나, 율리야 티모셴코의 율리야 티모셴코 블록, 페트로 시모넨코의 우크라이나 공산당과 '오렌지 연합'을 구성했다.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1,632,098표(5.82%)를 득표하며 3위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결선에서는 빅토르 유셴코 후보를 지지했고, 오렌지 혁명에 앞장섰다.
2006년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선거에서 1,444,224표(6.87%)를 득표해 33석을 획득했고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장 직에 올랐다. 그러나 빅토르 유셴코의 우리의 우크라이나, 율리야 티모셴코의 율리야 티모셴코 블록이 모로즈가 독단적으로 의장 직을 가져간 것[4]에 반발하면서 사회당은 오렌지 연합에서 이탈했다. 이후 지역당, 우크라이나 공산당과 반위기연합을 구성했다. 그리고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총리로 임명하는 데 찬성해 야누코비치 정부 출범에 큰 공을 세우는 등[5] 완전히 약 1년 전 오렌지 혁명 때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곧 의장 선출과 총리 선출 과정에서 불법 논란이 일어 의회가 해산되었고 사회당 역시 이로 인해 치러진 2007년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선거에 참여했지만 668,234표(2.83%)를 득표하면서 0석[6]을 획득하는 참패를 당했다. 갑자기 바뀐 스탠스에 친서방 성향과 친러 성향이 공존하는 지역 기반인 중부 지역의 표가 분산된 탓에 한 석조차 얻지 못했다.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95,169표(0.38%)를 득표하며 11위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201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개인 정당인 올렉산드르 모로즈의 사회당 소속으로 13,139표(0.06%)를 득표하며 26위로 낙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