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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 롯데 마린즈 2025 시즌 코칭스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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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cccccc,#323232> '''<1군> 21 요시이 마사토 [[감독#s-1.1| ★ ]] · 70
후쿠우라 카즈야 · 73
카나자와 타케시 80 오츠카 아키라 · 82 오노 신고 · 84 쿠로키 토모히로 · 87 네모토 슌이치 88 카네코 마코토 · 90 미츠야마 히데카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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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 72 미키 료 · 75 호리 코이치 · 76 에무라 나오야 · 77 구리하라 켄타 78 오토나리 켄지 · 81 이시미네 쇼타 · 83 모로즈미 켄지 · 86 사부로 [[감독#s-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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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잔류군> 79 마츠나가 타카히로 · 85 오타니 토모히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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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닝> 1군 키쿠치 다이스케 · 네모토 준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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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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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NPB 팀 명단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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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91919><colcolor=#ffffff> 치바 롯데 마린즈 No.80 | |
오츠카 아키라 大塚明 / Akira Otsuk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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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5년 4월 28일 ([age(1975-04-28)]세) |
오이타현 벳푸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4cm, 83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학력 | 오이타 현립 벳푸 하무로다이 고등학교 |
프로입단 | 1993년 NPB 신인드래프트 3위 |
소속팀 | 치바 롯데 마린즈 (1994~2010) |
지도자 |
치바 롯데 마린즈 2군 외야 수비·주루 코치 (2011)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외야 수비·주루 코치 (2012) 치바 롯데 마린즈 2군 외야 수비·주루 코치 (2013~2017)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외야 수비·주루 코치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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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야구선수이자 현 치바 롯데 마린즈의 코치.2. 선수 경력
벳푸 우모로다이 고교에서 투수로 시작했으나 프로에서는 내야수로 입단했다.2.1.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1994시즌 프로데뷔 첫시즌 유격수로 출전하여 2군에서 34개의 실책을 기록하였다.(...)이때 당시에는 그만두고 도망치고 싶다라는 마음이있었다고 한다.
1997시즌 2군에서 34 도루를 기록하며 2군리그 도루왕에 선정되었다. 이 해 외야수로 전향하고 1군 첫 출전을 하였다.
1999 시즌 등번호를 23번으로 변경했다.
낮은 타율을 기록하면서도 3번타순을 맡는 등 기대를 보였지만 오른쪽 어깨 통증과 2003년 왼쪽 슬개부 인대 파열 등 매년 같이 부상에 시달렸다.
2005 시즌 선발, 대주자, 대수비 등으로 출전 경기 수는 증가했다. 외야수 부문 수비율 리그 1위(수비율 10할)를 기록하며, 팀의 리그 제패에 공헌했다.
2006 시즌 전 시즌의 활약을 바탕으로 많은 출전기회를 받았으나 개막전부터 부진에 빠지며 109경기 출전 타율 0.242 10타점에 머물렀다.
2007 시즌 거듭되는 부상으로 인해 주로 대수비 로 49경기 출전했다.
2008 시즌 7월 2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서 6회말 처음으로 1루수 대수비로 들어갔다.
같은 팀 사부로의 부상이나 하야카와 다이스케의 부진 등도 있어 103경기를 출전했으며, 3년만에 홈런도 기록했다.
시즌종료 후 국내 FA행사권을 취득했지만, 행사하지않고 구단과 계약을 하며 잔류하였다.
2010 시즌 2월에 왼쪽 무릎 반월판 수술을 받았다.
8월 19일 구단에서 2010년 시즌 한정으로 은퇴하고, 남은 시즌은 코치 보좌로 2군에서 지도하기로했다.
11월 21일 은퇴식을 하였다.
3. 지도자 경력
2011년 시즌부터 2군 외야 수비 겸 주루코치로 임명 되었다.2012년 시즌 1군 외야 수비 겸 주루 코치로 변경되었다.
2013년 시즌 2군으로 다시 내려갔다.
2018년 시즌 다시 1군으로 승격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미리 크로스 느낌을 주는 폼으로 오른쪽 타격 능력은 능숙함으로 정평이 나있고, 좋은 펀치력을 가지고 있다.
수비에서는 넒은 수비 범위나 강한 어깨로 잘 알려져 있었다. 선수 말년으로 갈수록 부상의 영향으로 어깨가 약해졌지만, 포구에서 송구까지의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커버했다.
다만 누적기록을 보면 타율이 낮고[1] 선구안도 좋지 못하며[2] 빠른 발에 비해 주루도 그렇게 좋지 못해[3] 정 완전히 주전으로 나온 경우는 거의 없다. 장타툴, 주루툴, 어깨툴 모두 좋았지만 센스나 정확도가 부족했던 툴플레이어 스타일. 실제로 현역 시절에 주루사가 꽤 많았으며, 2020년대 이후로는 좀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주루코치로도 주루사를 꽤 많이 만들어냈다(...).
5. 기타
- 경마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수술 후 야구에서 필요한 최소 근력 유지하기 위해, 일년에 몇번 스테로이드 간접 주사를 오른쪽 어깨에 맞았었다 일본 야구계에서 의료 목적의 스테로이드제 주사가 허가된 몇 안 되는 사례다.
- 2008년 7월 5일, 홈경기에서 원정유니폼을 착용하고 플레이하는 '비지터 나이트 데이'가 열렸다. 하지만 오츠카 아키라 혼자서만 일반 홈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장내 아나운서의 장내 방송을 듣고 처음 깨닫았다는 해프닝이 있었다.
- 2008년 7월 25일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6회말 1루수로 출전했는데. 내야수로써 1군 출전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이것에 대해 오오츠카는 당시 블로그에 "한번이어도 좋으니까 내야수로 1군경기에 나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그런 뻔뻔한 꿈이 이런 형태로 이루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라고 말했다.
- 동갑내기에 입단 동기인데다 선수로도 코치로도 원클럽맨을 하며 무려 31시즌 째 팀메이트로 있는 후쿠우라 카즈야와 오노 신고와 꽤 가까운 사이로 보인다. 실제로 오오츠카의 은퇴식에 후쿠우라와 오노가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당시 오오츠카는 후쿠우라에게 너의 은퇴를 기다리겠다고 말했으나 후쿠우라가 무려 9년이나 지나서 은퇴하는 바람에 9시즌이나 선수와 코치라는 애매한 사이로 지내야 했다(...).[4]
6. 관련 문서
[1]
통산 .244. 오오츠카가 뛸 때는 지금의 투신타병 NPB와는 다르게 꽤나 타고였어서 3할 타자와 40홈런 타자가 심심찮게 나왔다.
[2]
통산 사사구/삼진 갯수가 106/326. 통산 1700타석이라 풀 시즌을 뛰었다면 넉넉히 100삼진을 넘기면서 사사구는 30~40개에 그쳤을 수준이다.
[3]
통산 도루성공률 65.4%. 도루 자체는 53번 시도했고 2000년에 유일하게 두자릿수 도루를 해냈다.
[4]
오오츠카는 2010년을 끝으로, 오노는 2013년을 끝으로, 후쿠우라는 2019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 세 사람은 1975년생이라 35살로 퇴한 오오츠카도 할 만큼 했고, 38살로 은퇴한 오노 정도만 돼도 선수로 꽤나 오래 활약했다고 할 수 있다. 44살까지 현역으로 뛴 후쿠우라가 대단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