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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탱리고도선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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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흉노 선우
오유선우 烏維單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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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 <colbgcolor=#ffffff,#191919> 난제(攣鞮) | |
휘 | 오유(烏維) | |
아버지 | 이치사선우(伊稚斜單于) 난제이치사(攣鞮伊稚斜)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105년 |
재위 기간 | 기원전 114년 ~ 기원전 105년 |
흉노의 제6대 선우. 이치사의 아들로 그가 죽자 선우로 즉위했다.
기원전 112년에 전한의 사자로 온 곽길이 선전포고를 하면서 싸우지 않을 것이라면 항복하라고 하자 곽길을 만나게 한 주객[1]을 참수하고 사자로 온 곽길을 감금시킨다. 이러한 강경한 태도를 하면서도 한나라를 침공하지 않고 훈련하면서 화친을 청했으며, 흉노의 풍습에 대해 잘 아는 왕오가 한나라의 사신으로 오자 거짓으로 자신의 아들을 한나라에 인질로 보내준다고 약속을 하면서 화친을 청했다.
기원전 108년[2]에 한나라에서 양신이 사신으로 오면서 화친을 하면 태자를 인질로 보내라고 하자 한나라가 옹주와 함께 많은 물건을 보내주면 한나라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본래의 약속을 어겼다고 말하면서 한나라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또한 한나라가 사신을 보내면 똑같이 답례로 사신을 보내면서 한나라가 사신을 억류하면 똑같이 사신을 억류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으며, 양신이 다녀간 이후 한나라에서 왕오를 사신으로 보내자 거짓으로 한나라의 천자를 직접 만나서 형제의 약속을 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을 왕오가 본국에 보고하여 한나라에서 장안에 선우를 위한 저택을 짓자 한나라의 고관을 보내라는 요구를 하면서 흉노의 고관을 보냈는데, 그 고관이 한나라에 도착하면서 병사하자 사신을 죽였다고 여기고 한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노충국을 억류한다. 이는 한나라의 사신들을 속이고 흉노의 기습 부대를 보내어 한나라의 변경을 침범하려고 한 것 뿐으로 기원전 105년에 사망한다.
묵돌선우 시기 복속된 오손이 흉노로부터 거리를 두고 멀어진 시점이 오유선우 재위 기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