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9 00:32:24

오사카 연쇄 강도살인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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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 경위
2.1. 2000년: 중국인 유학생 살인 사건2.2. 2008년: DD하우스 살인사건
3. 재판 결과4. 범인에 관하여5.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에서 2000년 2008년에 발생한 연쇄 강도 살인사건. 특히 2008년 사건은 사건이 일어난 건물의 명칭을 딴 'DD하우스 살인사건(DDハウス殺人事件)'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졌다.

2. 사건 경위

2.1. 2000년: 중국인 유학생 살인 사건

2000년 7월 29일 새벽 1시경 오사카시 주오구 우에혼마치 노상에서 남성 2명이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국인 여성 한잉(韓穎, 당시 24세)에게 접근해 나이프로 위협한 뒤 얼굴을 구타하고 현금 6만엔과 지갑이 든 가방을 강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잉은 유학생으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는 길에 중국에 있던 약혼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귀가하던 중 자택 인근까지 도달한 시점에서 습격당한 것이다. 이 때 2명 중 카가야마 료지(加賀山領治, 당시 50세)라는 남성이 도주를 시도했고 한잉은 그를 뒤쫓았다. 마침 이 광경을 목격한 30대 남성이 차로 그를 추격해 도주를 차단하려고 했지만 남성이 그를 붙잡으려고 하자 카가야마는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했고 이 과정에서 남성의 왼쪽 대퇴부에 전치 10일의 상해를 입혔으며 이후 자신을 뒤쫓던 한잉의 가슴과 복부를 찔러 살해했다. 카가야마는 도주 후 약 100m 떨어진 공원에 피 묻은 가방을 유기한 뒤 현금을 빼낸 지갑 등 나머지 유류품들을 공원에서 약 200m 떨어진 민가 옆에 유기했다.

당시 카가야마를 저지하려고 했던 목격자 남성은 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해 '나이는 대략 50세 안팎, 키는 170cm 정도의 다부진 체격'이었다고 증언했으나 수사는 난항에 빠졌고 결국 이 사건은 범인을 잡지 못한 채 한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2.2. 2008년: DD하우스 살인사건

2008년 2월 1일 밤 10시 13분경 카가야마는 강도 목적으로 오사카시 키타구의 상업용 빌딩 'DD하우스'를 찾았는데 화장실에서 범행 도구를 점검하던 그는 실수로 드라이버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와 동시에 고베시에 거주하던 회사원 모리나가 아키라(森永彰, 당시 30세)[1]가 화장실에 들어왔다. 카가야마는 모리나가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했으나 모리나가는 이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도둑질이라도 할 셈이냐며 카가야마의 가방 안을 보려고 했다. 그러자 경찰에 신고당할 것을 두려워한 카가야마는 우발적으로 모리나가의 가슴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말았다.

사건 당일 모리나가는 저녁 7시경부터 DD하우스 1층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밤 9시 30분경 2층의 바로 이동한 뒤 10시 15분경에 화장실에 갔다가 살해당했는데 바에서 화장실까지는 약 50m 거리였고, 카가야마가 화장실에 들어간 뒤 약 40초 후 모리나가가 들어갔다가 불과 1분 남짓한 동안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모리야마를 살해하고 도주했던 카가야마는 범행 1주일이 지난 2008년 2월 8일 오전 10시 경찰서에 자진출두하여 범행을 자수했고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자수 동기에 대해 "뉴스를 보고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으며 강도 목적이었음을 시인했기 때문에 오사카 지방검찰청은 2월 29일 카가야마를 강도살인죄로 기소했고 조사 과정에서 2000년의 중국인 유학생 살인 사건 현장에 남았던 혈흔의 DNA가 카가야마와 일치함을 밝혀냈는데 카가야마는 이 사건에 대해서도 범행을 시인하면서 "당시 함께 노숙을 했던 60세 정도의 남자가 제의해서 범행을 저질렀다. 빼앗은 돈은 둘이 나눠 가졌다"고 진술했지만 공범의 이름과 인상착의 등을 알 수 없어 특정에는 실패했다.

3. 재판 결과

2009년 2월 27일 오사카 지방법원은 1심에서 검찰 측 구형대로 카가야마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흉기를 준비하여 피해자들에게 수 차례 상해를 입혔고 심한 부상을 입힌 점에 대해 계획적으로 살의를 갖고 저지른 범행으로 보인다며 살해 의도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카가야마 측은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했으나 동년 11월 11일 기각되었고 이에 상고했으나 2012년 7월 24일 최고재판소가 상고를 기각함에 따라 사형이 확정되었다.

카가야마는 사형수 신분으로 오사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2013년 12월 12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향년 63세.[2]

4. 범인에 관하여

카가야마 료지는 1950년 미야자키현에서 태어났으며 위로 형이 있으며 부모는 이혼한 상태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직업훈련학교에 입학했고 목수 일을 하거나 배달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그러던 중 20세였던 1970년 강도사건 2건과 강도 미수 1건을 잇달아 저질렀으며 여기에 더해 모델건을 가지고 강도 미수 사건을 일으켰다가 도주하던 자신을 추격하던 상대에게 전치 1개월의 상해를 입혀 강도치상죄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 후 27세에 결혼하여 2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35세에 이혼했고 40대에는 이시카와현의 한 운송회사에서 일했으나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위해 도쿄, 오사카, 고베 등지를 전전하다가 결국 일정한 직장 없이 노숙자로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2000년 오사카성 공원에서 노숙을 하면서 지내던 그는 전 애인과 모친에게 반복적으로 돈을 요구했으나 그렇게 얻어낸 돈은 전부 파칭코 등으로 탕진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결국 다른 노숙자와 공모하여 중국인 유학생 살인사건을 일으키고 도주하고 한동안 일용직으로 일하며 지냈지만 일거리가 없어지고 가지고 있던 돈도 바닥날 무렵 자립지원 센터를 소개받고 한 재활용 업체에 취직했으나 직장 내 인간관계 문제로 약 3년만에 퇴직했다. 이후 일용직 노동을 하거나 지인에게 돈을 빌려 근근이 먹고 살던 중, 2008년 2월 돈이 떨어지자 강도 목적으로 DD하우스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2번째로 살인을 저질렀다.

5. 관련 문서


[1] 당시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이었던 프로야구 선수 쿠보 야스토모의 처남이라고 한다(부인이 모리나가의 여동생). [2] 참고로 일본에서 사형 확정 후 실제로 집행되기까지는 평균 7~8년 정도가 걸리는데 카가야마는 형이 확정된 지 불과 1년 5개월 후에 집행되었다. 이는 일반적인 사형 집행 기간에 비해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