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능력치 | ||||
시기 | 무력 | 지휘력 | 지력 | 의지 |
7권 | 89 | 92 | 97 | 100 |
가이드북 | 89 | 92 | 97 | 100 |
애니판의 성우는 아카기 스스무/ 오오하라 모모코(少).
실제 역사에서 이름만 따온 인물로, 작중에서는 위나라의 무장이자 전국사군자 중 한 명인 신릉군의 식객이며 오봉명의 아버지이다.
왕기의 설명에 따르면 신릉군의 지혜주머니라 불리며 군사전략으로는 위나라 최고인데다 진나라와의 사감평원 전투 직전에 진나라의 환성을 함락시키는 등 무용도 갖춘 열국을 위협할 명장이라 한다. 위안리왕 때 위나라를 대표하는 장수인 화룡칠사 중의 한 명이었지만, 화룡칠사들끼리 싸움이 벌어져 3명이 죽었을 때 유일하게 관여하지 않아서 무사했던 오경은 나머지 화룡칠사들을 살려주었지만, 그들이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화룡칠사 중 오경만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원래는 위나라의 동쪽에 위치한 갑이라는 소국의 왕족으로, 작중 사감평원에서의 전투가 일어나기 29년 전에 조나라의 공격으로 조국이 멸망할 때 간신히 가신 한 명과 도망치게 된다.그러나 이 때의 충격으로 백발이 되었고 이후 가신과 전국을 유랑하다 신릉군의 식객이 되어 위나라를 제 2의 조국으로 삼게되었다.
사감평원 전투에서는 박호신의 닥돌 등으로 부장인 궁원이 죽거나 하는 등으로 조금 열세이기는 했지만 진나라의 군사수는 대략 5천여 명 정도이고 위나라는 5만여 명의 군사를 가지고 있었기에 잠시 물러나 압도적인 병력으로 싸우면 표공과 진군을 박살낼 수가 있었으나, 표공의 닥돌에 과거 조국이 멸망한 것이 떠올라 침략자에게 굴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생겨 표공과 일기토를 벌인다.초반에는 막상막하로 겨루나 곧 표공에게 밀리다가 위에 서술한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데, 이에 표공은 난세에서 소국이 도태하는 것은 흔한 일인데 그것에 집착하여 사적인 일로 장군의 책무를 잊고서 자신과 일기토를 겨룬다며 비웃고 마지막으로 일합을 받다가 결국 사망한다.[2]
그래도 표공은 오경을 죽인 뒤 지략과 무력으로 자신을 고전시키며 마지막까지 불타올랐다며 감탄했다.
마지막에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운 일기토를 받아들인 것은 총사령관으로서는 절대 하면 안되는 행위였다. 지력이 왕기, 양단화, 염파보다도 높은 사람이, 병력이 열세에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돌발행위를 해서 죽은 꼴이니 독자들 입장에서는 깔 만도 하다. 차라리 말했던대로 철수하는 편이 더 좋았다.
산양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윤호가 천인장들을 암살할 때 언급되어 몽염이 나원에게 명백히 실력자들만 노린 것을 보고 누군가가 이 앞의 대전을 위해 포석을 깔아두고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나원이 오경이 세상을 떠난 뒤로 이렇게 지금부터 포석을 깔아둘 정도의 전략을 가진 장군은 위나라에 없다고 말했다.
왕기는 "오경은 전쟁을 이치만 따지는 장기판으로 생각해요"라고 말하는데, 장기가 지금의 모습으로 정착된 것은 대략 육조시대로 본다. 장기 비슷한 게임은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므로 꼭 틀린 비유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전국시대에 있었을 것이 분명한 바둑으로 비유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3] 그리고 그림에서 오경이 생각하는 장기판은 아무리 봐도 중국이 아닌 일본 장기판이다(...)
결국 연재 십년뒤에 오경과 비슷한 짓거릴 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이목(킹덤)이다. 이목(킹덤)/비판 문서의 카이네 구출 논란 참고
[1]
다만 모든 능력치가 오경보다 높거나 같은 인물들도 있다. 창평군, 왕전, 악의, 와린, 이목 등이다.
[2]
그리고 이는 작가가 전투의 마지막은 일기토로 끝내려고 한다며 까이는 요소의 시발점이 된다.
[3]
평야에서 싸우는 전투의 비유로서는 장기가 바둑보다 더 나은 건 부정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