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89년)
후한 말의 인물. 황보규의 후처, 황보숭의 숙모.
그녀의 출신도 성씨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고 예종은 후대 사람들이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 붙인 존칭일 뿐이며, 문장을 잘 짓고 초서에 뛰어났다고 한다.
황보규는 아내가 일찍 죽어 예종을 후처로 삼았으며, 예종은 가끔 남편 황보규 대신 편지의 답장을 쓰기도 했는데 답장이 너무 훌륭해서 사람들은 기이하게 여겼다. 174년에 남편 황보규가 죽었을 때 예종은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고, 189년에 동탁이 상국이 되자 예종에 대해 알고는 많은 재물을 보내 그녀를 첩으로 삼으려 했다.
예종은 평상복을 입고 동탁의 자택 앞에 와서 무릎을 꿇으며 용서를 빌었다. 동탁은 시종들에게 칼을 빼들고 그녀를 둘러싸게하며 "나의 위엄이 사해에 떨치고 있거늘, 고작 여자 하나에게 내 위엄이 떨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예종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일어서서 동탁에게 욕했다.
넌 태생이 오랑캐이거늘, 천하에 해악을 끼치고도 부족한 것인가! 나의 선조는 대대로 맑은 덕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나의 남편 황보 가문은 문무가 뛰어난 한의 충신. 너의 부모는 황보 가문의 종이 아니었는가! 너는 주인의 부인에게 무례를 범하고자 하는 것인가!
동탁은 수레를 뜰로 끌어내려 그녀의 목을 멍에에 매달고, 회초리와 몽둥이로 그녀를 구타했다. 그녀는 몽둥이를 든 남자에게 "더욱 쳐주시오. 빨리 죽게 해주는 것이 정이오."라 말했고 결국 수레 밑에서 죽었다. 후세 사람이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 예종이라고 칭했다.
예종의 일화는 후한서의 열녀전 황보처전에 기록되어있으며, 한국 조선시대의 서적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등에도 수록되었다.
예종의 출신과 성씨가 기록되지 않은 후한서와 달리, 당나라 시대 장회관(張懐瓘)의 저서 서단(書斷)에서는 황보규의 처 예종이 부풍군 출신이며 성은 마씨(馬氏)라고 기록되어 있다.[1]
옛날에 부풍의 마부인이 있어 대사농 황보규의 아내이며 재주와 학식이 있고 예서를 잘했다. 부인이 과부이니 동탁이 정혼해 아내로 삼으나 부인이 굽히지 아니해 동탁은 그녀를 죽였다.
先有扶風馬夫人,大司農皇甫規之妻也,有才學,工隸書。夫人寡,董卓聘以為妻,夫人不屈,卓殺之。
서단 중권
先有扶風馬夫人,大司農皇甫規之妻也,有才學,工隸書。夫人寡,董卓聘以為妻,夫人不屈,卓殺之。
서단 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