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1:23

역사저널 그날/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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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즌 23. 시즌 4
3.1. 주제별 특집편
3.1.1. 패널들의 만담장3.1.2. 주제와 맞지 않는 진행3.1.3. 단편적인 지식의 향연3.1.4. 역사 왜곡 논란3.1.5. 초대한 전문가의 병풍화3.1.6. 소재의 고갈3.1.7. PD와 제작진의 역량?
3.2. 2023년 현대사편
3.2.1. 지나친 박정희 관련 분량 할애3.2.2. 사실관계 오류3.2.3. 급격한 노선 선회
3.3. 총평

1. 개요

역사저널 그날에 나오는 문제점과 이에 대한 비판을 다룬다.

2. 시즌 2

2.1. 역사왜곡 논란

2018년 6월경 임진왜란 2편 이순신 VS 원균, 일등공신은 누구인가? #1 #2라는 원균에 대한 썰을 푸는데 패널 중 한 명이 원균 후손이다보니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을 보여준다. 댓글도 온통 욕하는 댓글 뿐이다.

주요 골자는 원균은 선무공신이니 명장이라는 주장과 칠천량 해전의 패전의 책임은 권율과 조정 탓이라는 주장이다.

당연하지만 1의 주장은 선조가 신하 전부가 반대했는데도 이순신 명성 견제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2에 대해서는 아무리 원균이 막장이라도 권율이 압박해선 좀 아닌듯 하는 0.1%에 가까운 사견이 있긴한데 이 0.1%조차 없어질 정도로 원균은 막장이었다.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하기 전부터 전공 부풀리기에 힘을 올렸으며 이를 가지고 조정에 장계를 올린 게 이순신이다. 이때부터 원균은 이순신에 대한 악감정이 받쳐 나중에 부산 가토 일로 모함한다. 이순신은 "부산에 가토가 이미 있으며, 군세를 보았을 때 부산을 치기 어렵다"고 했다. 게다가 원균은 이순신의 명성이 높아 가지치기 들어가려던 선조에게 궁합이 아주 잘 맞았던 것이다.

이순신은 부산 공세가 무리더라도 소규모라도 부산을 깔짝대며 견제를 했다. 반면 원균은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 내쫓고 그 자리를 이어받고 난 뒤 자신이라면 부산을 공격할수 있다는 말과 다르게 기생과 술을 마시며 놀고 있었다. 즉 권율이 아니라 조정이 먼저 원균을 질책했고 이후 권율이 원균에게 조정 기만죄로 곤장을 친 것이다.

원균의 행보가 하도 어이없어서 요즘에는 "차라리 원균을 사형시켜야 했다"는 주장도 나올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조정을 기망했다곤 해도 원균은 엄연히 임금인 선조가 직접 통제사 자리에 임명한 인물로, 권율이 상급자인 도원수라곤 해도 일개 병졸도 아니고 당상관을 멋대로 죽여버리지는 못한다. 권율이 진짜로 원균을 처형시켰다간 권율 본인도 무사치 못했을 것이고, 선조가 원균에게 거는 기대를 보면 처벌하라는 명이 내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선조는 이상한 짓만 하는 원균을 자꾸만 감싸고 돌던 왕이다. 그러니 권율이 원균을 두들겨 팬 것은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선 내에서 최대한 원균을 응징한 셈이다.

또, 조정이나 권율은 원균에게 총 공세를 펼치라고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순신이 해왔던 것처럼 보급선을 교란시키라는 정도였지 조선 수군 전체를 이끌고 크게 싸우라는 소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균은 이를 멋대로 해석하여 조선 수군 전체를 이끌고 갔다.

결국 이 방송회차는 엄청난 역사왜곡이었으며, 원씨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 원유철 또한 원균 왜곡에 사활을 거는 터라, 원유철에게 얼마 받았냐는 조롱이 강하다. 심지어 원유철은 원균이 아닌 원연의 직계자손이다.

이 회차에서는 원연 같은 진짜배기 명장이나 칠천량 해전에서 형인 원균과는 달리, 배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한 원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했다. 정작 원균보다 수천배는 유능한 원연 장군에 대해서도 입을 닫고 있는 중인데, 사실상 원연이나 원사립, 원전 등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장수는 아니다. 원균을 재조명하는 횟차였기에, 원균에 모든 걸 몰아줬을 수도 있다.

원연은 원균과 원전의 동생인데 실제로 왜적과 맞서 대승을 거둔 의병장이다. 이 승전을 계기로 현감 직을 제수하였고 휴전 기간 동안 전란에 힘들어한 백성들을 돌보아 칭송을 받은 인물이다. 이 당시 원균은 휴전 기간 중에 선빵쳤다가 선빵 필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반격한 일본군에게 탈탈탈 털렸다. 게다가 원연의 아들, 즉 원균의 조카인 원사립은 정유재란 때 서천군수로 왜적을 막아내 대승을 거둔 전공도 세웠다. 원연은 정유재란에서 전사했다.

3. 시즌 4

3.1. 주제별 특집편

3.1.1. 패널들의 만담장

역사저널 그날, 그 중에서도 시즌 4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점. 역사에 대한 토론보다는 패널들 간의 대화가 중점을 이루고 있고, 이에 따라 각 회차별 핵심 주제가 그렇게 많이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시즌 4 초창기에는 이런 경우가 덜했으나,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 주제보다는 패널들 간의 대화, 그 중에서도 고정 출연진 간의 대화가 부각되다 보니 교양 프로그램을 보는 건지 토크 프로그램을 보는 건지 모른다는 불만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만담을 피울 수도 있지만, 역사저널 그날 시즌 4의 경우 오히려 주객전도가 되었기 때문에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3.1.2. 주제와 맞지 않는 진행

아일랜드 독립 전쟁, 인도 타지마할 편,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특히 부각된 문제. 아일랜드 독립 전쟁의 경우, 아일랜드를 소개한답시고 뜬금없이 기네스를 이야기하며 기네스 흑맥주를 마시고, 인도 타지마할에서는 마지막에 인도식 무용을 보여주고,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비빔밥과 선지국이 최후의 만찬이라며 이를 먹방하는 역사와는 동떨어진 컨텐츠를 다수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비판을 사고 있다.

특히 아일랜드 독립 전쟁이나 제2차 진주성 전투의 경우 그 비극과 참혹함으로 인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지한 토론이 오가는 게 맞다. 아일랜드 독립 전쟁과 제2차 진주성 전투 모두 아일랜드인과 조선인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 전쟁사이다. 특히 제2차 진주성 전투는 조선인이 잔혹하게 학살되었는데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잊은 채, 비빔밥과 선지국에 올인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진주식 비빔밥을 먹으며 전투의 의지를 다질 수 있는 맛이라던지 전투를 잊게 해주는 맛이라고 한다는 것을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이전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다룰 때에는 이런 식으로 당대의 사람들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이 거의 없었다는 것.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이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역사적 사건에 대한 조롱과 희화화가 덧붙여지고 있으며, 채널이 본래 추구했던 가치나 의도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다른 예시로는 영국 여왕 즉위 70주년 특집 1부가 있다. 영국 여왕을 통해 군주의 자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70년 동안 왕위를 지킨 비결을 이야기하고자 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여왕의 일상 모습과 패션, 그리고 여왕이 영국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논의하는 것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는 상당히 아쉬운 부분인데,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를 시작한 1953년부터 2022년까지, 영국은 대내외적으로 끊임없는 도전과 역경을 마주하며 이를 극복했다. 대표적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한 1953년에 영국은 6.25 전쟁과 말레이 비상사태를 겪고 있었고, 이후 수에즈 위기, 아프리카 식민지 독립, 포클랜드 전쟁, 걸프 전쟁 등과 같이 대외적으로 큰 분쟁에 연이어 개입하는 실정이었다. 또한 영국은 1950년대 경제 성장, 1960년대 반문화 운동, 197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 1990년대 세계화 등 대내적으로도 여러 변화를 겪으며 오늘날의 사회 구조 및 문화적 가치를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대내외적 상황에서 여왕이 어떤 판단을 내리고 결정했는지를 다루는 것은, 당대 여왕이 세계 및 국내의 문제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었고, 또한 이를 어떻게 헤쳐나갔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슬기로운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1997년 웨일스 공작부인 다이애나가 사망했을 때, 영국 왕실이 버킹엄 궁전에 황실기를 조기로 내거는 것을 거부하자 많은 언론이 이를 질타했다. 여왕이 당시 스코틀랜드에 있었고, 영국 왕실 관례 상 여왕이 거주하지 않을 때 궁에 황실기를 걸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여왕은 국민들의 의사를 수용해 관례를 깨고, 유니언 잭을 조기로 걸도록 했다. 다이애나 비 사망 이후 2005년 런던 테러나 2019년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테러와 같이 국가적 애도를 표할 일이 생기거나 왕실의 일원이 사망하면 유니언 잭이 조기로 걸리는 관습이 생겼다. 이런 사례만 보더라도, 엘리자베스 2세가 어떤 여왕인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1.3. 단편적인 지식의 향연

한국사는 그나마 심도 있게 다루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세계사의 경우에는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교과서나 위키백과, 나무위키를 뒤져도 나올 수 있는 수준의 지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인도 타지마할이나 제1차 세계 대전, 일본 막부, 만리장성 등이 그 예이다. 문제는 지상파 그것도 KBS가 심층적인 역사 탐구를 목표로 한 프로그램에서 이런 단편적인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 대전 선포문 편의 경우, 사라예보 사건 발칸반도에 집중하다보니 전반적인 1차 세계 대전을 다루지는 못했다. 게다가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최태성은 독일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큰형님이라고 불렀다. 애당초 오스트리아 제국이 나폴레옹 전쟁 이후 국력이 쇠퇴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세계 강대국 자리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도 아니었고, 독일에게 뒷배를 봐줘야할 만큼 국력이 쇠약해진 것도 아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산업, 영토, 인구 면에서 유럽 3위 안에 드는 저력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전시에서 중요한 기계공업이 미국, 독일, 영국 다음으로 세계 4위에 오른 국가였다. 오스트리아 제국 헝가리 왕국의 독립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을 수립한 것은 오스트리아 내 경제적 위기와 군사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고, 1868년 타협을 통해 이를 부분적으로 해결했다. 즉, 독일의 뒷배 없이도 충분히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국가인 셈이다.

이시원은 최태성의 말에 제1차 세계 대전을 말죽거리 잔혹사라고 부르는, 초중고 교과서에 나올 법한 수준의 발언을 보여주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참전한 국가들의 참전 원인을 살피려면 영국-벨기에의 런던 조약(1839년), 영국과 독일의 해군력 경쟁, 두 차례의 발칸 전쟁 모로코 위기,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그리고 188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이어진 유럽 각국의 군사동맹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1차 대전 발발 당시 세르비아 왕국과 러시아 제국은 공식적으로 동맹을 맺고 있지 않았고, 러시아 제국은 같은 동방정교회 슬라브 국가라는 점에 입각해 세르비아를 정치, 종교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다만 이런 지원을 받은 국가는 세르비아뿐만 아니라 몬테네그로, 그리스, 그리고 제1차 발칸 전쟁 때까지의 불가리아도 포함된다. 자세한 내용은 제1차 세계 대전/배경 참조.

2022년 8월 14일 광복절 특집 일본 편에서는 미국제 전투기들의 기종을 구별하는 문제가 나왔다. 설령 이런 구별법을 몰랐다 하더라도, 이걸 굳이 방송 안에 집어넣었어야 할 지도 의문이다. 패널들이 간단하게 설명만 하고 끝내면 됐을 것이다. 더욱이 이것 역시 검색을 하면 다 나온다. F는 "Fighter", A는 "Attack", B는 "Bomber", C는 "Cargo", T는 "Trainer"다. 설령 미국이 이 체계를 만들었다고 해도, 우리나라 역시 미국식 제식 명칭을 따르고 있다. 최근 개발이 착착 진행되는 KF-21 보라매, 우리 공군의 주력 훈련기인 T-50 골든 이글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니면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이나 F-35 라이트닝 II, C-130 허큘리스 등 우리나라에서 운용 중인 미국제 군용기가 수두룩하다. 패널들이 보여준 모습은 아예 우리나라 국방이나 무기에 관심이 없었다거나, 알았다면 표현이 저속하긴 하지만 서로 꿍짝을 맞춘 셈이다. 해당 횟차에서는 허준을 "군 프로그램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고 소개했으며, 최원정은 KBS 아나운서, 최태성은 한국사 교사다. 이들 입장에선, 더욱이 공영방송인 KBS 패널들이란 점에서는 알아야 할 상식인 셈. 그리고 대답은 배우 이시원만 했는데, 결국 이시원을 몰아주기 위한 일종의 코너였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일본 평화헌법과 자위대에 대한 토론에서는 또 다시 심각한 역사적 몰이해를 보여주었다. 일단 현재 일본의 헌법인 평화헌법에 일본인들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헌법에 일본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게 넌센스다. 뒤에서 교수님의 설명을 통해서야 해당 의미가 정정되었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넘어갔다면 일본국 헌법은 "미국 군정부가 일본인에게 강요한 일방적인 법"이라고 해석될 뻔했다. 결말부에서도 '나는 일본 국민들을 믿지 않는다', '정상 국가는 남의 피를 보며 즐거워하지 않는다' 같은 멘트를 날리며 반일정서만 배설하는 수준에서 끝나고 말았다. 심지어 일본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한반도를 먼저 침공했다며 평화헌법이 개정된다면 한국을 침공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멘트를 지속적으로 날렸는데 이쯤되면 그냥 동네 아저씨들의 역사 토의 보다 나을 게 없는 수준.[1]

일본 관련된 문제는 잠잠해지나 싶었지만, 2022년 12월 18일 방영된 백강 전투 편에서 다시 또 문제가 터졌다. 일본의 국호가 "왜"(倭)에서 "일본"(日本)으로 바뀐 것이 백강 전투 때문이었다는, 소극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중심의 역사관", 조금 더 멸시해서 부르자면 "국뽕에 가득 찬 의견"을 피력했다. 우리나라나 중국이야 당대 일본을 "왜"라고 불렀지만,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을 "왜"라고 부르지 않았다. 왜국 문서에 보면 야마토 정권의 공식 국호가 "왜"였다고 나오지만, 일본을 비롯한 외국 사료를 보면 "왜국"은 중국과 한국, 그리고 주변 국가들이 일본을 가리킬 때 쓰던 표현으로 보고 있으며, 정식 국호가 아닌 대외 관계 때 쓰이는 칭호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2][3] 이 시기 일본의 정식 국호는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외적으로는 왜라고 불렸지만, 대내적으로는 야먀토(やまと), 와(わ) 등으로 불리었고, 한자 역시 倭, 和, 大和 등으로 다양했다. 중요한 것은 백강 전투가 일본의 국호 변경의 중요한 원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661년 백강 전투 이후 겐메이 천황의 명령으로 일본의 국명은 大和로 정해졌고, 부르는 명칭 역시 야마토였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는 8세기가 되어서야 완전히 정착하는데, 이 국호 역시 백강 전투 이전인 수나라 시기부터 견수사 파견 이후 간간히 사용되고 있었다. 더욱이 일본이라는 국호가 변경된 이유도 구당서와 일본 측 사기정의(史記正義)의 기록이 다르다. 다만 모든 기록에서 보면 겐메이 천황 시기 일본의 국호가 변경된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다만 역사저널 그날이 말한대로 "백강 전투 때문에 일본의 국호가 변경되었다"라는 것은 백강 전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짜맞췄을 가능성이 높다.[4]

세계사에서 이런 문제점이 나오는 이유는 패널들의 영향이 크기도 하다. 최태성은 한국사 전문 강사이고, 이시원이나 허준 역시 역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국사와 관련된 주제를 다룰 때는 '어느 정도' 질이 높아진다. 어느 정도라고 표현한 이유는 제2차 진주성 전투 등 주제별 특집편에 나온 한국사도 이전 한국사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질이나 깊이가 한참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저널 그날의 주력 간판이었던 한국사도 주력으로 내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계사와 관련해서는 일반 교양 프로보다 더 못한 수준이 되고 말았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초빙 패널과의 꾸준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왜곡될 수 있는 사실들을 바로잡거나 내용 자체를 초빙한 패널들이 이끌어가야 하는데, 문제는 앞서 이야기했듯 패널들 간의 만담장으로 바뀌어서 전문가들이 간간히 끼어들거나, 전문가가 아닌 최태성이 주제를 논의하는 등, 전문가들이 병풍이 되는 상황이 일반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전문가를 불러놓고도 교과서 수준의 이야기를 하는 모순으로 인해 다른 전문가 초빙 프로그램과 비교해도 문제가 심각하다. 차이나는 클라스의 경우, 초빙한 전문가가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이에 대해 패널들이 수업 내용에 관해 질문을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역사저널 그날과 비교했을 때 내용의 질이 상당히 높고, 역사저널 그날과는 정반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벌거벗은 세계사의 경우, 역사저널 그날처럼 일부 에피소드가 논란이 많았지만, 역사저널 그날과 비교했을 때 주제에 대한 탐구도나 토론 정도가 훨씬 깊었다.

3.1.4. 역사 왜곡 논란

역사를 다루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교차 검증인데, 이것이 사실상 빠진 채 진행이 되고 있다. 특히 특정 주장에 대한 교차 검증이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는 역사 논란, 음모설 확산, 또는 사실에 대한 왜곡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역사에서 특정 입장만을 반영하는 편향성과도 연결이 된다.

대표적인 예시로 오스만 제국 편에서 그리스는 여전히 이스탄불을 교과서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부르고 있으며, 이는 그리스가 이스탄불을 자기 땅으로 되찾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라고 교수가 직접 언급했는데, 이 주장은 사실무근이다.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 회원국, 즉 군사안보 동맹국이다. 그리스가 저런 주장을 펼쳤다가는 미국이나 영국, 유럽 연합 등에게 제재를 받거나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 또한 이스탄불을 자기 땅이라고 수복하겠다고 공언하는 순간 해외 영토를 침략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법으로도 위반된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가 역사적으로 자기 땅이었다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 반도를 병합한 뒤 국제 사회로부터 비판받은 것과 마찬가지. 또한 굳이 그리스가 아니더라도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들의 역사학자나 전문가들도 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플"이라 불렀으며, 오스만 제국도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의 튀르크어 발음인 코스탄티니예(Ḳosṭanṭīnīye)라고 불렀다. 이스탄불이라는 이름도 오스만 제국 시기에 쓰이기는 했지만, 1930년대 이후가 되어야 튀르키예에 정착되었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이 그리스만의 명명법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물론 일부 그리스인들은 "위대한 이상"( Μεγάλη Ιδέα, 일명 메갈리 이데아)라고 하여 옛 그리스의 영토를 회복하기를 원하고, 이들 중 일부는 황금새벽당을 만들어 이 "위대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었다. 이들은 옛 이오니아 지방, 에피루스, 트라키아, 키프로스를 그리스의 영토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2021년 황금새벽당의 당원들 대부분은 살인 및 공갈죄로 체포되었으며, 그리스 내 국민투표에서 황금새벽당은 의회에서 한 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즉, 그리스인들 모두가 "위대한 이상"에 동조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 더욱이 MC인 최원정이 끝나지 않은 역사라고 말해 더욱 불을 지폈다. 교수의 주장에 대해 아무런 반박 없이 액면 그대로 이를 받아들였다는 거다.

또 다른 사례로는 인도 타지마할 편이 있다. 해당 편에서 타지마할을 소개하며 힌두교의 나라에 꽃핀 이슬람 문화라고 했는데, 이것 역시 편향적인 서술이다. 타지마할을 비롯한 무굴 제국의 문화를 "무굴 문화"라고 부르는데, 이 문화는 더 넓은 인도-이슬람 문화와 인도-페르시아 문화의 일부로 간주된다. 문제는, 인도-이슬람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한 시점이 무굴 제국 건국보다 무려 400년 가량 앞선 1193년이라는 점이다. 아프가니스탄 지방에 있던 구르 왕조가 인도 델리로 수도를 옮긴 시기이다. 이후 델리 술탄국 시기가 열리면서 인도-이슬람 문화가 더욱 촉진된다. 인도-페르시아 문화는 이보다 늦기는 했어도 델리 술탄국이 들어선 13세기부터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와 연관해서 보자면 배우 이시원이 한 발언인 인도 사람들이 이슬람 문화에 낯설어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인도-이슬람 문화는 물론이고, 이 문화가 발달하기 이전부터인 오늘날 인도-파키스탄 국경 지대인 신드 지방에는 645년부터 711년 사이에 이슬람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1000년 이후에는 북쪽의 가즈니 왕조가 인도 서북지대를 침략하여 1030년경에는 북인도를 지배하기도 했다. 이후 북인도에는 구르 왕조, 델리 술탄국, 그리고 무굴 제국이 들어섰고, 좋든 싫든 당시 북인도 사람들은 지배 계층인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힌두교와 이슬람을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은, 인도인 입장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자 때로는 자극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포이 항쟁 벵골 분할령, 파키스탄 운동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인도는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이슬람교도가 살고 있으며, 인도는 이슬람 협력 기구에 지속적으로 가입을 추진했다. 마하트마 간디를 비롯한 옛 인도 독립주의자들은 힌두교와 이슬람을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을 식민지배 당사국인 영국의 계략이나 음모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독립 이후 인도는 헌법에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세속주의를 명시했다. 인도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이기 때문에 인도 내의 이슬람과 힌두교 모두 인도 문화와 종교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결국 인도라는 나라가 "힌두교의 나라"라는 것은 인도의 역사, 정치, 문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역사적 주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역사적 주장에 대해 아무런 검증 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폐해가 반복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어느 한 쪽의 주장이 지나치게 편향된 경우, 그 주장에 반박하거나 그 주장에 문제가 없는 지 짚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스만 제국 편처럼 지나치게 튀르키예의 주장이 드러나는 경우, 해당 문제의 다른 쪽에 있는 그리스 전문가를 모셔 튀르키예 측 주장이 맞는지 검증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서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의견을 도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또 패널들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이전 열심히 해당 사건에 대해 공부하고 분석하면 된다. 일반인들이야 세계사에 대해 간단한 지식만 알아도 문제가 없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KBS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이 세계사를 다루면서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국격을 떨어뜨리고, 한국인들에 대한 외국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울 뿐이다. 예컨데 도쿄 올림픽 당시 MBC가 국가들을 엉망으로 소개했다가 각국 대사관에서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3.1.5. 초대한 전문가의 병풍화

두 명의 게스트가 초대되는데, 한 명은 해당 주제를 다루는 전문가이고, 다른 한 명은 역사저널 그날에 한 번 이상은 출연했던 예능인이다. 문제는 전문가의 비중이 거의 다른 패널들의 비중에 의해 깎아먹인다는 점. 한국 현대사까지만 하더라도 전문가들이 자료도 준비하고 설명도 하고, 별도의 코너에서 같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시즌 4 주제별 특집으로 넘어오면서 이런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5]

패널들이 주로 프로그램을 이끌고, 전문가들은 간간이 주제를 설명하거나 주제에 관련된 여러 썰을 푼다. 그런데 이것 자체가 큰 모순인 것이, 애당초 패널들의 주제와 관련된 지식은 초빙한 전문가들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 이는 위에서 설명했듯, 최태성을 제외한 나머지 패널들은 모두 예능인이고, MC 역시 아나운서이지만 역사적 지식이 그렇게 풍부하지는 않다. 또한 최태성 역시 한국사 전문 강사이기 때문에 세계사에 관한 지식은 상당히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초빙한 전문가들은 해당 주제를 전공한 교수이거나, 또는 해당 사건과 큰 연관이 있는 곳에서 활동했거나, 또는 그 사건과 관련된 문화, 국가, 또는 정치 등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사람들이다. 그런 전문가를 모셔놓고 역사와는 관련 없는 만담을 하고, 먹방을 하고 있으니 전문가 입장에서도, 그리고 시청자 입장에서도 어처구니가 없는 게 당연하다. 또, 한국사 강사가 모든 주제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다보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최태성이 전부 진행하면 되지 뭐하러 교수들을 초빙했냐"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로 시즌 4를 보면, 패널들의 어이없는 대화나 만담에 초빙한 전문가들이 벙찐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상당히 많았다. 즉, 전문가들을 초빙해놓고 전문가의 비중이 거의 미약한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말았다. 문제는 역사저널 그날이 토크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에 따라 다큐멘터리 정도의 교양과 질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또한 해당 프로그램이 예능이나 개그 프로그램이 아닌 "교양 프로그램"이니만큼, 제작진들이 패널들 간의 쓸데없는 대화는 최대한 자제시키고,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심도 있게 풀어낼 수 있도록 초빙된 전문가에게 많은 시간과 분량을 할애했어야 한다. 물론 초빙한 전문가에게 모든 것을 일임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면 "토크멘터리"라는 프로그램의 방향과 부합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는 분위기로 흘러가다보니 만담이나 잡담, 그리고 이상한 컨텐츠들이 중간중간 개입되는 것이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다. 실제 시즌 4 한국 현대사편에서는 전문가들의 촘촘한 설명 덕택에 위에서 설명한 먹방, 만담, 잡담 등이 거의 없었고, 만담이나 잡담도 특정 횟차를 제외하면 프로그램 내에서 비중이 상당히 적었다. 그런데 시즌 4 주제별 특집편, 특히 후반부로 넘어오면서 전문가들의 비중이 줄다보니 그만큼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 만담이나 잡담, 그리고 먹방이나 뜬금없는 컨텐츠들로 이를 때우는 것이 아니냐는 나름 합리적인 추측이 가능하다.

그래도 2023년 1월에 방영된 신제국의 탄생 청나라 편은 박민수 교수가 직접 쇼호스트로 나서기도 하고, 야외촬영을 통해 삼전도비를 소개했고 교수의 비중이 꽤 높았던 것 같은데 신제국의 탄생 편을 보면 이전에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비판을 제작진도 어느 정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3.1.6. 소재의 고갈

이전 시즌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로, 여태 나왔던 주제를 재탕하거나 우려먹고 있다. 특히 한국사에서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339회부터 340회까지야 드라마 태종 이방원을 위한 특집편이라고 봐서 넘어갈 수 있어도, 315회부터 318회까지 이어졌던 동아시아 삼국의 전쟁을 387회부터 390회까지 다시 다루었다. 이 외에도 조선왕릉 편이나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편 등, 한국사의 주제는 돌려막기나 우려먹기로 점철되어 있다.

2021년 3월 23일 "박종철 열사" 편이 끝난 뒤 역사저널 그날은 크게 세계사와 한국사로 주제가 나뉘는데, 한국사의 경우 소재가 상당히 많음에도 예전 것을 우려먹은 것은 제작진의 역량 부족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역사라고 할지라도 단순히 사건이나 인물에만 집중할 필요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음악, 과학, 예술, 사회, 정치, 문화 등도 넓은 범위에서는 역사에 들어가며, 이를 연구하는 학문들과 역사를 연계지을 수 있다. 바꾸어말하면 사건의 흐름이나 인물의 전기뿐만 아니라 음악사, 과학사, 예술사, 문화사, 정치사 모두 역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에서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에만 집중하는 현재 역사저널 그날의 내용은 미시적 관점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2024년 1월 28일 방영된 고려 무신의 난 관련 편성은 2016년 6월 26일 방영분과 패널만 달라졌지 내용은 동일하다.

또한 한국사에서는 인물의 전기나 사건, 또는 유적만을 다루면서 세계사에서는 '대항해시대'나 '몽골 제국', '삼국지', '독소전쟁' 등을 다루는 것은 모순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후자는 단순히 하나의 사건을 넘어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 정치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그 사건으로 인한 영향 역시 파급력이 엄청 났다. 대한민국 역사에도 이런 일은 많았다. 1997년 외환 위기는 물론이고, 현재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주도하는 K-Pop, 2002년 한일 월드컵 등이 있다.

굳이 파급력이 어마무시한 사건이 아니라 할지라도 다룰 수 있는 소재는 많다. 대한민국 내에 있는 세계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6] 대한민국 예술이나 음악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어도 괜찮다. 아니면 아프라시아브 벽화나 일본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처럼 세계사와 연관되는 한국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7]

결국 정리하자면, 사건과 인물에 집중한 현재 역사저널 그날의 경우 새로운 소재에 대한 발굴 없이 "주제편"을 이어가다보니 과거의 소재를 살짝 비튼 정도에 그치고, 나아가 참신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1.7. PD와 제작진의 역량?

전반적으로 PD와 제작진이 너무 프로그램을 만들 때 큰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다. 2021년 4월 13일부터 약 2년 동안 약 100회까지 전반적으로 재탕이 너무 많았고, 흥미가 가는 주제들도 일회성에 그쳤기 때문. 대항해시대나 삼국지, 독소전쟁도 자세히 따지고 보면 여러 서적이나 자료에 나온 걸 복붙한 수준이었고, 그나마 몽골 제국 편에서 예전 역사저널 그날이 보여주려고 했던 참신함과 독특한 시각이 되살아났다.

중요한 점은 100회나 되는 동안 예전에 나왔던 내용이 계속 해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학의 경우 주제가 무궁무진하여 파도파도 새로운 주제가 나오는 법인데, 정작 대한민국 대표 방송인 KBS에서 수신료를 받고도 이런 식의 프로그램을 짠다는 것은, 결국에는 PD와 제작진의 역량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조금 더 고민하고 깊이 있게 생각해본다면, 세계사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를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 주제는 대부분 특집이나 가십거리 수준으로 끝이 났으며, 2023년 3월부터 세계사를 다룰 듯하게 인트로를 바꿨음에도 오히려 처음 바뀐 인트로에서 나온 주제들은 KBS 50주년 기획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공사창립 50주년을 맞아 역사저널 그날이 처음 보여준 것은 국산차 포니였고, 뒤이어 다음 횟차에 보여준 것은 금성(현 LG) VS 삼성이라는 두 대기업의 경쟁사를 다룬 것이었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국가의 업적을 설명하는데 올인하다 보니 정작 당시 전체적인 대한민국 상황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컸고, 이전 한국 현대사 시즌에서 박정희 시기에 나왔던 경제성장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주제와 맞지 않는 인물들에게 주제의 설명을 계속 맡기는 것도 문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금수 박사. 이 사람은 조선무예 전문이지, 세계 무예 전문가는 아니며, 군사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다. 결국 독소전쟁에서 미국이 트럭을 제공해준 덕분에 우리가 아는 트럭에 달린 카튜샤가 개발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쳤다.[8] 제작진과 PD가 한 번 익숙한 사람을 계속 쓰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

시대의 흐름이나 현재 한국 및 세계의 실정에 맞지 않는 기획도 보인다. 현재 역사저널 그날은 tvN에서 제작한 벌거벗은 세계사와 그렇게까지 차이가 없을 정도로 경쟁력이 저하되었다. 문제는 KBS는 공영방송이고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나라 3대 방송사 중 하나이며 역사저널 그날은 시사, 교양 프로그램으로 분류되는데, tvN은 CJ사의 주요 방송사 중 하나이고 벌거벗은 세계사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수준이 예능 프로그램과 별반 다를 바 없다면, 이미 그 프로그램은 원래의 질과 수준이 한참 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이 문서에서 서술한 모든 문제는 결국 PD와 제작진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프로그램 분류는 시사교양으로 해놓고 정작 기획이나 방영, 편집, 자막 등은 예능이랑 별반 다르지 않게 하다보니 차별화 전략이 먹히지 않고 있으며, 2021년부터 출연진 교체 없이 그대로 쭉 밀고 가다 보니,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기도 어렵다. PD와 제작진, 출연진의 유대가 지나치게 끈끈하다는 것도 문제.

3.2. 2023년 현대사편

3.2.1. 지나친 박정희 관련 분량 할애

박정희가 대한민국 경제를 일으키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토대를 만드는데 어느 정도 기여한 인물은 맞지만, 현재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지나치게 박정희 위주로 방영을 짜고 있어 시청자들의 불만을 샀다. 3월 5일 400회부터 4월 9일 405회까지 "잘 살아보세" 특집에 이어, 천마총 발굴 50주년까지 박정희를 끼워넣었다는 것. 물론 박정희가 이룩한 업적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 현대사 시즌과 달리 해당 업적에 따라오는 비판이나 문제점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부 라이브챗에서는 정권이 바뀌더니 태세 전환하는거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결국 406회가 김재규 편으로 방영될 예정으로 다시 또 박정희와 관련된 인물이 등장함으로서, 역사저널 그날의 제작진이 무슨 이유로 이런 방영을 이어가는지 의문을 자아내는 중. 그리고 뒤이어 407화에서는 박정희 암살 이후 김종필을 다룰 예정이라, 결국 7주 연속으로 박정희 관련 횟차로 몰아주기하고 있다.

역사저널 그날이 방영할 때 같이 올라오는 실시간톡에서는, 정권이 바뀐 뒤 정권의 입맛에 맞게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조롱과 비아냥이 줄을 이었고, 비판이나 문제점을 하나도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소위 "박정희를 빨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하고, 출연진에게 댓글로 면박을 주기도 했다. 물론 박정희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에는 변화 없지만, 지나친 미화는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 만약 앞으로도 역사저널 그날이 박정희 관련 주제로만 편성하다면, 이런 비판이나 조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비판으로는, 이미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나 경제발전은 지난 시즌 3에서 이미 진행되었던 바가 있기 때문에, 굳이 주제로 다룰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박정희 살해의 경우 이미 2021년 1월 19일 297회 때 10.26 박정희 대통령 피살이라는 제목으로 다룬 바 있고, 경제 성장 역시 277회, 281회, 282회, 290회, 294회 등 총 5번 방영한 바 있다. 즉, 이미 여러 차례 나누어 다룬만큼 새로 다루는 것에 의미가 없다는 것. 또한 박정희 시대를 이미 272회 5.16 군사정변에서 297회 10.26 사태까지 집중적이고도 세세하게 다룬만큼 다시 박정희를 소환하는 것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일부 언론에서도 "박정희 신화 만들기"라며 해당 방영분을 비판했다. #미디어스 기사

3.2.2. 사실관계 오류

파일:역사저널 그날.png

2023년 8월 13일 방송에서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뒤를 잇는 극우 세력으로 방송했다. 이는 명백한 오류인데, 기시다는 자민당내 대표적인 온건파 세력인 굉지회의 소속된 인물로써 아베 신조와 같은 성향으로 묶일 인물이 아니다. #[9]

3.2.3. 급격한 노선 선회

3.3. 총평

패널들의 안 좋은 태도 및 자세, 검증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의 난무, 그리고 편향적인 편집 및 주장으로 인해 역사저널 그날은 쇠락하고 있다. 오히려 같은 시즌이지만, 전작인 한국사의 경우, 이러한 문제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같은 시즌이 맞는지 눈을 씻고 의심할 정도. 시청률은 이전 시즌보다 높지만, 그렇다고 질까지 같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특히 세계사의 경우,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어서 개선이 시급하다.

실제로 시즌 4 한국 현대사편의 경우, 여러 요소들이 고루 박자를 맞추어 최고의 시너지를 낸 시즌이 되었다. 전문가들의 철저한 준비와 리드, 패널들의 "가벼운 농담", 그리고 전체적인 주제에 방해가 되지 않는 코너 속 코너까지,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어우러져 자칫 무거워보일 수도 있는 한국 현대사의 내용을 최대한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했다. 물론 5.18 민주화 운동이나 6월 민주 항쟁 등은 내용이 상당히 무거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큰 교훈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결국 앞선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시즌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동안은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사회경제사에 치중하더니만 <고려 거란 전쟁>이 시작되는 즈음부터 고려사로 옮겼는데 고려사 또한 이전에 한참 이야기가 되었던 것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럴바에는 프로그램을 종영시키고 과거의 역사스페셜 형식의 다큐를 다시 만드는 것이 훨씬 낫거나, 혹은 위에서도 언급하듯 우리나라 안의 있는 다양한 역사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꾸려 나가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일 정도로 질이 한참 떨어진 모습이라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아무튼, 고려사를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2024년 설 특집을 마지막으로 약 3개월의 휴식기에 돌입했는데, 그 과정 또한 순탄치 않은 상태에서 과연 이후 진행할 프로그램이 어떻게 갈 것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1]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되봐야 한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이기상 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본인들 입만 찢어진다. 한번만 일본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옵션거리 조차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막연히 일본=나쁜 짓이라면 뭔들 할 놈들이라고만 전제하니 다각적 사고가 안 되는 것이다. [2] 비슷한 예로 우리나라의 정식 국호는 대한민국이지만, 대외 관계에서는 단순히 한국 또는 korea로 칭하는 것이나, 옆나라 중국의 경우 정식 명칭이 중화인민공화국이지만 대외관계에서는 단순히 중국 또는 China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스페인이나 조지아처럼 정식 국호가 "에스파냐"나 "사카르트벨로"가 있음에도 외국에서 더 많이 불리는 이름을 대외 관계에서 쓰는 경우도 있다. 즉, 왜국이 정식 국호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3] 중국이나 우리나라 측의 기록을 빌려 중국 위지동이전이나 한서 등에서 "왜"라고 불렀다고 해서 그 나라 국호가 "왜"인지는 조금 더 따져볼 문제다. 예를 들어 중국은 고조선, 부여, 동예 등을 모두 동이라고 불렀는데, 그렇다고 이 나라들의 국명이 "동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내적인 공식 명칭이 무엇인지는 일본 측의 사료를 보다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4] 물론 백제의 멸망이 일본의 정치 및 대외 관계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항상 한국을 중심으로 이를 서술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시기 일본은 아직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인 야마토 시대였다. 실질적으로 일본이라는 국호가 정립된 것은 늦어도 703년인데, 이 시기는 일본이 견당사를 통해 중국식 풍속을 받아들인 시기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백강 전투가 일본이라는 국호로의 변경에 영향을 준 것은 거의 없다고 무방하다. [5] 대표적인 예가 프로야구를 다룬 회차인데, 무려 다른 방송사의 야구 해설위원인 허구연을 게스트로 섭외해 놓고는 프로야구 원년구단들의 설립 비화를 자세히 이야기하던 허구연의 말을 몇 초짜리 빨리감기로 편집해버렸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은 프로야구 편에서 프로야구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6] 대한민국은 인도, 중국, 일본 등과 더불어 아시아에서 세계 유산이 많은 국가 중 하나에 속한다. [7] 물론 일본에 있는 문화재는 식민지 시기와 임진왜란 때 강탈한 것이다. [8] 흔히 스탈린의 오르골이라 불리는 카튜샤는 미국이 무기대여법으로 트럭을 제공하기 1년 전인 1941년 이미 ZIS-5와 ZIS-6 트럭에 장착되어 개발을 끝낸 상황이었다. 물론 1942년부터 들여온 무기대여법을 통해 카튜사 다연장로켓이 소련의 주력무기로 자리매김하기는 했다. [9] 사실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빅텐트 정당인 자민당을 극우정당이라고 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가 아닌 단순히 한국에 우호적인지 아닌지를 놓고 극우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경향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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