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 교지군의 관리로 오나라를 섬기다가 263년에
손서,
등구 등이 오나라의 관리들이 장정들을 건업으로 보내 노역을 하거나 공작을 거둬들이는 등 착취했으며, 전쟁을 살피는 관리가 도착해 이들이
징용될 것을 우려해 여흥은 병사, 백성들을 선동하고 이민족들을 유인해 불러들여 봉기해 손서, 등구를 죽였다.
여흥의 봉기에 구진군, 일남군도 호응했고 여흥은 사자를 위나라로 파견해 태수, 병사를 요청했으며, 교지의 관리들은 여흥을 독교지제군사, 상대장군, 안정현후로 삼아 조정에서 포상을 내려 변방을 어루만져 주시기를 청한다고 했다. 위나라에서는 여흥을 사지절, 도독교주제군사, 남중대장군에 임명하고 안정현루에 봉하면서 여흥을 돕기 위한 군사를 보냈는데, 여흥은 위나라에서 책봉하는 조서가 도착하기 전에 공조 이통에게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