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01 10:19:01

여순(삼국지)

如淳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사례 빙익군 사람으로 위나라에서 진군승을 지냈다.

안사고의 한서서례에 따르면 한서의 주석가 중 한 사람이며, 후한 시기부터 오호십육국시대까지에 이르기까지 순열, 복건, 응소, 복엄, 유덕, 정씨, 이비, 이기, 등전, 문영, 장읍, 소림, 장안, 맹강, 항소, 위소, 진작, 유보, 신찬, 곽박, 채모, 최호 등과 함께 주석가로 언급되었다.

한서에서 기원전 198년 기사에서 관고를 포함해 조왕 장오를 따랐던 무리들의 삼족을 모두 멸했다고 하는데, 이 기록에 대한 주석을 달았던 학자들은 삼족의 범위에 대해 다른 의견을 보였다. 삼족에 대해 장안은 부모, 형제, 처자식이라고 했고 여순은 아버지의 친족, 어머니의 친족, 처의 친족이라 했고 안사고는 여순의 의견에 옳다고 여겼다.

한서 백관공경표에 대한 주석에서는 태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옹현에 태재와 태축의 영과 승이 있으며, 천자가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오치에는 각각 위 1인을 둔다고 했는데, 문영이 옹은 숙식관을 주관한다고 했고 여순은 오치가 옹에 있어서 특별히 태재 이하의 제관을 두었다고 해서 안사고가 여순의 설이 옳다면서 옹은 우부풍의 현으로 태재는 음식을 갖추는 관리로 다시 조리할 사람을 두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했다.

한나라 때 수도인 장안의 풍속도를 적은 놓은 책인 삼보황도는 저자와 성립 연대를 알 수 없지만, 한서에서 기원전 158년 6월 겨울의 기사에서 흉노 3만의 기병이 상군, 운중을 침입하면서 여러 장군들을 임명해 막도록 하는 것에서 인용된 것이 나온다.

여기서 여순의 주석에는 극문이라는 곳에 대해 삼보황도에 따르면 극문은 횡문 밖에 있다는 것으로 인용했으며, 이로 인해 삼보황도의 성립 연대에는 후한 말 이전이라는 견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