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규 앨범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width=25%> ||<width=25%> ||<width=25%> ||<width=25%> ||
Let Go 정규 1집
2002. 06. 04.Under My Skin 정규 2집
2004. 05. 19.The Best Damn Thing 정규 3집
2007. 04. 11.Goodbye
Lullaby정규 4집
2011. 03. 02.Avril
Lavigne정규 5집
2013. 11. 01.Head Above Water 정규 6집
2019. 02. 15.Love Sux 정규 7집
2022. 02. 25.
- [ 기타 앨범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
- [ 정규 싱글 ]
- ||<-5><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bgcolor=#38546c> ||
<rowcolor=#9b9b9b> <rowcolor=#9b9b9b> <rowcolor=#9b9b9b> Girlfriend 정식 싱글
2007. 02. 27When You're Gone 정식 싱글
2007. 06. 19Hot 정식 싱글
2007. 10. 02The Best Damn Thing 정식 싱글
2008. 06. 21<rowcolor=#9b9b9b> <rowcolor=#9b9b9b> <rowcolor=#9b9b9b> Head Above Water 정식 싱글
2018. 09. 19.Tell Me It's Over 정식 싱글
2018. 12. 12.Dumb Blonde 정식 싱글
2019. 02. 12.I Fell in Love With The Devil 정식 싱글
2019. 06. 18.<rowcolor=#9b9b9b> Bite Me 정식 싱글
2021. 11. 10.Love It When You Hate Me 정식 싱글
2022. 01. 14.Bois Lie 정식 싱글
2022. 08. 26.I'm A Mess (with YUNGBLUD) 정식 싱글
2022. 11. 21.
1. 개요
활동 요약 영상 ( 우키팝) |
2. 어린 시절
에이브릴 라빈은 1984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벨빌에서 태어났다. 에이브릴 라빈은 어린 시절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라빈은 두 살때부터 엄마와 함께 교회를 다니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엄마는 라빈이 두 살때 교회에서 부른 〈예수 사랑하심은〉을 듣고 딸에게 재능이 있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라빈의 형제로는 오빠 매튜와 여동생 미셸이 있다.5세 때 나파니로 이사를 갔으며 그 곳에서 교회 성가대에 참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레니 크라비츠의 "Fly Away"란 곡으로 스스로 기타를 배웠다.
부모 역시 그녀의 취미를 지지해주면서 마이크와 드럼 키트, 키보드, 기타 등 여러 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집에 구비해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집 지하실을 아예 스튜디오로 꾸며주기도 했다. 이후 14세가 되던 해부터 그녀는 여러 컨트리 뮤직 행사에 출연해 가스 브룩스, 샤니아 트웨인 등의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 앞에서 보컬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일찍이 악기를 만졌던 만큼 스스로 작곡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그러다 행운의 기회가 찾아왔다. 1998년 그녀가 한 라디오 방송국의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 캐나다를 대표하는 컨트리 싱어 샤니아 트웨인과 한 무대에 서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결국 오타와 주 코렐센터에서 2만명의 관객 앞에서 그녀는 샤니아와 함께 ‘What Made You Say That’을 불렀다. 다음 해에는 로컬 포크 싱어 스티븐 메드(Stephen Medd)의 초대로 그의 앨범에서 듀엣을 녹음하기도 했다.
3. 2000년대
3.1. 2002~2003: Let Go
자세한 내용은 Let Go 문서 참고하십시오.2000년 11월 안토니오 L.A. 레이드가 CEO로 있던 아리스타와 계약 후, 라빈은 레이드의 도움으로 뉴욕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유명 작곡가, 프로듀서들과 데뷔 앨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라빈은 Complicated를 데뷔 싱글로 발매하게 된다. 당시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같은 섹시 팝 여가수가 판을 치고 있는 와중에 톰보이 컨셉에 쿨한 모습의 그녀에게 관심이 폭발적으로 쏠리면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데뷔 이후로 가장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치렀다.
이렇게 해서 공개한 음반이 에이브릴 라빈의 데뷔 앨범 <렛 고(Let Go)>였다. 2002년 6월에 발표한 이 앨범은 미국 앨범 차트 2위까지 올랐으며, 호주, 캐나다, 영국 차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하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팝 스타 탄생을 알렸다. 미국에서만 7백 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녀의 신드롬은 북미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도 그녀에게 열광하였다.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으며, 일본에서는 데뷔 앨범만 100만 장 넘게 파는 등 밀리언 셀러에 등극하였으며 한국에서는 SBS가 2년 연속(03, 04) 내한 공연을 녹화하였다[1].
이후 다음 싱글 Sk8er Boi를 발매하였고, 이 곡 또한 빌보드 핫 100차트에서 Top 10에 진입 하는 등 히트를 쳤고, 다음 싱글인 차분한 느낌의 발라드 곡 I'm with You 또한 Top 10에 진입하였다.
데뷔 싱글부터 I'm with You까지 3연속으로 빌보드 연간 차트에 진입하는 등 싱글 차트 성적도 좋았고, 정규 앨범은 발매 년도 전체 판매량 2위, 여성 가수 판매량 1등을 기록하며 데뷔 앨범으로는 보통 상상도 할 수 없는 판매량을 올렸다. 2003년 Losing Grip을 마지막으로 싱글컷함으로 앨범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
라빈은 1집 활동 마무리 즈음에 Try to Shut Me Up투어를 시작하였다. 투어 국가 중 한국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후 그녀는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내한을 많이 왔다.
이렇게 데뷔 이후 빠른 스타덤에 도달하지만 아직 10대였던 탓에, 그녀의 모습은 일부 록 팬들에게 “단지 록이라는 형식으로 십대들의 돈을 벌려고 한다”는 편견을 갖게 하는 데 일조했다.
또한 1집 활동이 끝날 무렵, 라빈은 많은 논란에 시달리게 되는데, 1집의 프로듀서 The Matrix가 라빈의 1집 참여도가 라빈이 주장하는 것과 다르다고 말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금발 머리의 섹시 컨셉 여가수들을 디스를 하며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라는 것을 내세운 그녀의 라이브 실력, 락 장르를 하는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어리다거나 너무 펑크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록커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록 팬들도 많았다.
이후 라빈은 2집에서는 1집보다 더 어두운 분위기와 실험적인 앨범을 만들 것이며, 음악적인 면에서 성장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에이브릴도 이런 부분을 의식했는지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의 곡 ‘Breakaway’ 작곡에 참여하고 다음 앨범에서는 더 어두운 분위기와 실험적인 앨범을 만들 것이며, 음악적인 면에서 성장할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새 앨범 작업에 매진했다.
3.2. 2004~2005: Under My Skin
자세한 내용은 Under My Skin 문서 참고하십시오.그 결과물이 2집 <언더 마이 스킨(Under My Skin)>(2004)이었다.
부치 워커(Butch Walker)의 프로듀싱 아래 록 밴드 아워 레이디 피스(Our Lady Peace)의 리더 레인 마이다(Raine Maida), 그리고 레인의 아내이자 솔로 뮤지션으로 활약중인 샨탈 크레비애주크(Chantal Kreviazuk) 등과 공동으로 만든 곡들을 담은 이 앨범은 발표와 동시에 호주, 멕시코, 캐나다, 일본, 영국, 미국에서 모두 차트 1위에 올랐다. 판매량은 세계적으로 1천만장을 넘었다.
앨범 판매량은 1집의 전성기를 잇는 데 성공했지만, 싱글컷한 곡들은 무겁고 우울했기 때문에 이전 싱글들 Complicated, Sk8er Boi 수준의 센세이션은 일으키지 못했다.[2]
이렇게 십대를 막 끝마치던 이 시점에 그녀의 인생에 또 하나의 큰 변화가 다가왔다. 바로 2년 전부터 친구로 알고 지내왔던 섬 41(Sum 41)의 데릭 휘블리(Deryck Whibley)와 사랑에 빠졌고, 2006년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에 골인했다.
3.3. 2006~2009: The Best Damn Thing
자세한 내용은 The Best Damn Thing 문서 참고하십시오.그와 결혼하면서 안정을 찾게 된 그녀는 여러 매체와 인터뷰에서 “여태까지 작품들 가운데 가장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의 앨범”이라는 말로 설명했던 3집 <더 베스트 댐 띵(The Best Damn Thing)>(2007)을 통해 다시 한 번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올렸다.
이모코어/팝펑크의 스트레이트하고 경쾌함을 대중적 멜로디 라인과 잘 교배해서 어떤 곡을 들어도 흥에 겨웠던 이 앨범은 음반업계의 불황 속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현재까지 5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4. 2010년대
4.1. 2010~2012: Goodbye Lullaby
자세한 내용은 Goodbye Lullaby 문서 참고하십시오.라빈의 4집은 사실 2008년 말부터 시작되었다.
4집의 첫 트랙 '블랙스타(Black Star)'는 2008년 11월에 자신의 홈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는데, 라빈은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이 곡을 완성하면서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이 앨범에 자신의 곡을 더 많이 채우겠다고 결심한 듯하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전 항상 곡을 써왔고, 갖고 있었지만, 여태껏 함께 작업한 몇몇 작곡가들은 그 곡에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자기가 만든 곡을 집어넣고 싶었으니까요.”
앨범 작업은 대부분 그녀의 홈 스튜디오에서 진행해서 시간은 오래 걸렸어도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부분을 이겨낼 만큼 마음의 여유를 그녀에게 선사했다. 일단 2009년 7월에 녹음이 완성되었고, 지난 2010년 12월에 정식으로 앨범 발표 계획을 공표했다.
원래 대로라면 2009년에 발매되어야 했지만, 틴 팝 스타일로 밀어붙이려는 소속사와 그것을 원치 않는 라빈의 갈등 때문에 앨범 발매가 미뤄졌다.
그녀의 보컬이 애절하게 다가오며 자신의 과거와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트랙 '굿바이(Goodbye)'까지 앨범 수록곡은 더욱 성숙한, 인생의 의미를 조금 더 알아가는 젊은 에이브릴 라빈의 모습을 깔끔하게 잘 그려냈다.
4집에서는 라빈 자신의 곡, 자신의 감정, 자신의 목소리가 이번 앨범에 제대로 투영되었을 만큼 공을 들인 앨범이다. 그러나 너무 긴 공백기와 컨셉 변화로 인해 이때부터 서서히 인기가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새로 떠오르는 여성 팝스타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