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15:48:32

에메릭 포글

루마니아의 前 축구감독
파일:Emerich Vogl.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에메릭 포글[1]
Emerich Vogl
출생 1905년 8월 12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티미쇼아라
출생 1971년 10월 29일 (향년 66세)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국적
[[루마니아|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루마니아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74cm
직업 축구선수(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키네줄 티미쇼아라 (1921~1922 / 유스)
키네줄 티미쇼아라 (1922~1929)
유벤투스 부쿠레슈티 (1929~1940)
감독 유벤투스 부쿠레슈티 (1942~1949)
루마니아 대표팀 (1942~1945)
루마니아 대표팀 (1947)
루마니아 대표팀 (1948)
루마니아 대표팀 (1950~1951)
국가대표 29경기 1골( 루마니아 / 1924~1934)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이후
3. 뒷이야기4. 수상
4.1. 클럽

[clearfix]

1. 개요

루마니아의 전 축구선수.

2. 생애[2]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포글은 1922년, 17세의 나이에 당시 루마니아의 신흥 강호였던 키네줄 티미쇼아라에서 데뷔했다. 그는 키네줄에서 1929년까지 활약하면서 전설적인 6연패의 기록을 일궈냈다. 1929년 친구 라슬로 라핀스키와 함께 유벤투스 부쿠레슈티로 이적한 포글은 1930년 개인 통산 6번째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이후 소속팀은 그럭저럭한 성적을 거두었고 포글은 1940년까지 선수로 활약했다.

2.1.2. 국가대표

포글은 1924년 8월,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국가대표팀에 처음 소집되었다.

그는 루마니아 대표팀의 주장이자 중심 선수로 활약했으며 두 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루마니아 대표팀의 주장으로 참가했다. 1930년의 그리스전에서는 대표팀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 골을 넣기도 했다. 이 경기에서 루마니아는 그리스를 8대1로 대파했다.[3]

초대 월드컵에선 페루전 우루과이전에 모두 하프백으로 출전했고 루마니아는 1승 1패, 2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조 1위만 진출할 수 있었던 4강전에는 우루과이에 밀려 진출하지 못했고 루마니아는 종합 8위의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다음 월드컵에서의 1라운드 상대는 체코슬로바키아였고 포글은 이 경기에서 라이트 풀백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루마니아는 아쉽게 역전패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했고 이 경기가 포글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가 되고 말았다.

2.2. 이후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후 포글은 1942년부터 1949년까지 유벤투스 부쿠레슈티의 감독을 맡았다. 그러면서 4차례에 걸쳐 루마니아 대표팀의 감독직도 맡았고 감독직에서 은퇴한 이후엔 라피드 부쿠레슈티 클럽의 고문으로 있기도 했다.

포글은 1967년부터 그가 사망한 1971년까지 루마니아 대표팀의 고문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 기간에 대표팀은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대회에서 루마니아는 비록 조편성에서 운이 없어 1라운드 통과에는 실패했지만 역대 최강의 브라질 디펜딩 챔피언 잉글랜드와 좋은 시합을 펼쳤다.

3. 뒷이야기

  • 첫 월드컵 당시 루마니아 축구계는 프로화가 되지 않아 거의 모든 선수들이 투잡을 뛰었다. 포글과 라핀스키도 회사에서 월드컵 출전을 막았고 하마터면 출전이 무산될 뻔했다.
  • 포글의 10년간 국가대표팀 커리어에서 첫 상대와 마지막 상대는 모두 체코슬로바키아였다.

4. 수상

4.1. 클럽

  • 디비자 A 우승 6회: 1922-23, 1923-24, 1924-25, 1925-26, 1926-27(이상 키네줄 티미쇼아라), 1929-30(유벤투스 부쿠레슈티)
  • 디비자 A 준우승 1회: 1935-36(유벤투스 부쿠레슈티)


[1] 루마니아어 식으로 읽으면 보글이지만 독일어로 읽으면 포글이 맞다. 그는 트란실바니아 작센인이라 불리던 독일계 주민이었다. [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3] 친구 라핀스키도 똑같이 대표팀 커리어의 유일한 골을 이 경기에서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