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1년에 하루카타가 다이네지의 변을 일으킬 때 스에군의 주력으로 활약했다. 모토나리가
아마고 하루히사와 싸워 빈고를 제압한 이후 하루카타에게 빈고의 지배를 명받았고, 이는 모토나리와 스에가 단교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모리 모토나리,
모리 타카모토 부자와 내통하여 모리 측으로 돌아서기로 약조하였으나, 과도한 지행 가증을 요구하여 모리 부자의 분노를 샀다. 특히나 타카모토는 "죽여야 할 걸 살려줬더니 역으로 성낸다,
카츠라 모토즈미, 후쿠하라 사다토시 같은 모리 씨의 정성깊은 가신들도 3, 4백관인데, 에라는 아무런 충의도 다하지 않았으면서 3백관도 모자란다고 한다"라며 분노하는 내용의 서장을 남기기도 했다(
해당 서장의 번각본. 709번 모리 타카모토 자필 서장). 결국 모리 부자는 후사히데를 버리기로 결정, 후사히데가 모토나리와 내통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누출하였다. 이에 의해 후사히데의 배반을 알게 된 하루카타는
히로나카 타카카네에게 명령을 내려 후사히데를 스오 이와국의 코하쿠인에서 살해하였다.
운토쿠 타이헤이키(隠徳太平記)에 따르면 모토나리와 내통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을 때 와카야마 성에 한 통의 편지가 보내졌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모토나리와 하루카타가 싸울 때 모토나리가 일전에 보슈국을 주기로 약속하여 모토나리를 위해서 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는 모토나리가 후사히데의 필적을 흉내내게 하여 쓴 편지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후사히데의 배반을 확신하지 않던 하루카타가 배반을 확신하여 후사히데를 살해했다고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모두 신빙성이 낮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