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1880년대의 독일 제국군/북독일 연방의 장성급 장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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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Generalfieldmarsc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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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원수 |
에버하르트 헤르바르트 폰 비틴펠트 | 알브레히트 폰 론 | 카를 폰 슈타인메츠 | |
상급대장 Generalober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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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상급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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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병과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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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중장 |
레오 폰 카프리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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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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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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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독일 제국군의 상급대장과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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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6> 독일 제국군 보병대장 에두아르트 보겔 폰 팔켄슈타인 Eduard Vogel von Falckenste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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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duard Vogel von Falckenstein 에두아르트 보겔 폰 팔켄슈타인[1] |
출생 | 1797년 1월 5일 프로이센 왕국 |
사망 | 1885년 4월 6일(향년 88세) 독일 제국 |
복무 |
프로이센군(1813년~1871년 독일 제국군(1871년 ~ 1873년) |
최종계급 | 독일 제국군 보병대장 |
주요참전 |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
서훈 | 푸르 르 메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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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두아르트 보겔 폰 팔켄슈타인은 독일제국의 장성으로 최종계급은 보병대장이다. 무려 1813년에 군에 입대한 고참이다.2. 생애
2.1. 초기
팔켄슈타인은 기초적인 교육을 마치고, 1813년 프로이센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예거(Jäger)로 자원입대했는데, 당시 시기가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시기였기 때문에 팔켄슈타인은 그 전쟁에 참전했다. 팔켄슈타인은 1841년 소령이 되었고 1848년 혁명 당시 베를린에서 다쳤다. 이후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이 발발하자 팔켄슈타인은 근위 소총 대대의 사령관으로 싸웠다. 이후 1850년, 9군단의 참모총장이 되었다.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이 발발했을때는 무능했던 프리드리히 폰 브랑겔장군의 참모총장이었다. 하지만 이후 헬무트 폰 몰트케로 교체되었다. 1864년 4월 22일, 팔켄슈타인은 푸르 르 메리트를 수훈받았고, 1865년 장군이 되었다.2.2.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발발하자, 팔켄슈타인은 서쪽에 있던 독일군을 지휘했다. 팔켄슈타인은 마인강 근방에서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연합군을 상대했다. 팔켄슈타인은 하노버 왕국의 카셀을 점령했다. 하지만 팔켄슈타인의 리더십이 뛰어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몰트케는 팔켄슈타인으로 하여금 하노버 군대를 끝장내라고 명령했으나, 팔켄슈타인은 보급의 부재로 항복을 받고 싶어했다. 이에 분노한 빌헬름 1세와 몰트케는 팔켄슈타인이 하노버 왕국군을 강하게 공격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하노버 왕국군은 보급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팔켄슈타인의 느린 진격에도 꽤나 겁먹고 있었다. 팔켄슈타인도 금방 전투를 이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팔켄슈타인에게 날라온 것은 랑엔잘차 전투의 패배했다는 사실었다. 다음날 도착한 팔켄슈타인은 다행히도 하노버 왕국의 항복을 얻어냈다. 여하튼 이일로 팔켄슈타인은 많은 양의 돈을 받았다. 이후에도 참모부와의 충돌로 팔켄슈타인은 해임되고, 에트빈 폰 만토이펠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팔켄슈타인은 보헤미아의 총독이 되었다.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했을때, 팔켄슈타인은 하노버에 거주하며, 독일 해안 지역의 방어를 조직했다. 그리고 민병대로 구성된 해상방어대(Seewehr)를 구성했다. 그 공로로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1873년 전역하고, 1885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