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엄창수(嚴昌樹) |
생몰 | 1923년 2월 26일 ~ 1989년 6월 8일 |
출생지 | 전라북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1] |
사망지 | 미국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엄창수는 1923년 2월 26일 전라북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0년 5월 11일 금산읍의 각종 업소에 근무하는 18세 내외의 청년동지 7명과 함께 친목을 위장한 항일결사 시장친우계(市場親友契)를 조직했다. 시장친우계는 그해 7월 진락동지회(進樂同志會)로 명칭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펴나갔다. 진락동지회는 항일운동의 방안으로 우선 일제의 지원병 강제모집에 반대하여 불합격자초운동(不合格自招運動)을 펴기로 하고 매월 15일에 모임을 갖고 이의 추진상황을 검토해 갔다. 또한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독립군(韓國獨立軍)과 접선하여 항일운동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동지인 최병무를 중국에 파견하였다. 이에 필요한 여비 2백원은 동 회원들이 40원씩 분담하여 마련하였다.한편 엄창수는 1940년 9월 17일 문대식(文大植) 등 3인과 더불어 금산군 남이면 의 관광명소인 진락산동굴(進樂山洞窟)의 암석에 페인트로 대형태극기를 그리고 조선독립만세라고 조각된 목탑(木塔)을 건립하여 항일민족의식의 고취에 힘썼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면서 1941년 2월 17일 일본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42년 5월 13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8.15 광복 후 미국으로 건너가 조용히 살다가 1989년 6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엄창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9년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현재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