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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3년 4월 26일 ~ 1998년 10월 11일)대한민국의 영화배우이자 코미디언. 황해도 개성 출신.
2. 상세
1942년 성보 악극단의 일원으로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고 악극배우로 활동했다. 그후 1955년에 뮤지컬인 춤추는 리버티함에서 파트너 역을 맡은 양석천[1]과 함께 뚱뚱이와 홀쭉이[2]와 운명적인 인연을 맺고 평생의 콤비로써 활동했다.신체적으로 우람하고 떡대가 있는 거구인 양훈과 깡마를 정도로 날씬하고 홀쭉한 몸매인 양석천과 함께하여 극장쇼, 영화, 코미디 프로그램등에 출연하며 슬랩스틱의 특유한 리액션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노년에는 영화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날렸다. 또한 1958년에는 구봉서, 김희갑 주연의 영화인 오부자에서도 감초 역할로 활약했고 이 영화가 대히트를 하면서 은막의 스타로 급부상하여 이듬해인 1959년에 이 두 사람만이 단독으로 주연한 군대를 소재로 한 김화랑 감독의 코믹영화인 '홀쭉이와 뚱뚱이:논산 훈련소에 가다'에 출연하여 큰 웃음을 주었다.[3] 그외에도 팔도강산 시리즈의 아류작인 팔도 주방장[4]의 주인공을 맡았다.
뚱뚱한 몸이지만, 둔한 것은 아니어서 1990년대에 찍은 아이스크림 광고는 춤추면서 찍었다.
1976년에 일시적으로 휴식기를 선언하고 자녀들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지만 1982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연예계에 복귀하여서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그러다가 1994년 초에 가짜 만병통치약 사건에 말려드는 바람에 벌금형으로 약식기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큰 충격을 받고 술에 의지해 지내다가 건강이 나빠졌지만 1995년에 문화 공로상, 1996년에는 한국 연예협회 문화 공로대상 1997년에는 한국의 코미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인해서 한국 예술문화 총연합회에서 수여되는 예총 예술문화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어서 끝내 1998년 10월 11일에 동맥경화로 향년 76세로 작고했다.
한국의 연예 평론가들은 대한민국의 희극인 1세대이기도 한 이들을 가리켜서 한국의 스탠 로럴(Stan Laurel)과 올리버 하디(Oliver Hardy) 콤비 또는 버드 애보트(Bud Abbott)와 루 코스텔로(Lou Costello) 콤비[5] 로써 칭하고 있다.
3. 활동 영상
생전 활동 모습. 왼쪽이 홀쭉이 양석천이고 오른쪽이 뚱뚱이 양훈이다. |
[1]
1921년 서울 출생으로 이문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한후에 1942년에 빅터 레코드에서 가수로 데뷔했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면 관객들의 반응은 없고 몸짓을 하면 폭소가 터져서 희극배우로 전향 했으며 1955년에 양훈을 만나서 뮤지컬 춤추는 리버티함을 공연하여 콤비를 결성하게 되었고 1956년 영화 청춘쌍곡선으로 영화계에 데뷔하여 은막에서도 활약했다. 이후 희극인으로서 여러 활동을 하다가 1990년 11월 6일 호흡기 질환으로 별세했다.
[2]
홀쭉이는 양석천이고 양훈은 뚱뚱이이다.
[3]
김화랑 감독의 뚱뚱이와 홀쭉이 시리즈는 '논산 훈련소에 가다.' 이 외에도 '흥부와 놀부' (1961), '실례했습니다.'(1964년) 등 3부작으로 이어지는데 아쉽게도 필름이 남아있는것은 논산 훈련소에 가다. 하나뿐 이다.
[4]
전국에 흩어진 자식들을 찾아다닌다는 모티브만 제자로 바꿔서 채용했을 뿐, 제자들이 각 도에 한 명 씩 있다는 설정은 없다. 제자가 여덟 명인 것도 아니다. 여담으로, 출연자가 모두
MBC 희극인실 소속의 개그맨/개그우먼이었다.
[5]
1950년대 중반 케이트 스미스 아워 라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거물급 개그맨들로 1965년에 애보트와 코스텔로 쇼(The Abbott and Costello Show)를 진행하기도 했다. 해당작품은 1970년대 중반에 MBC에서 '홀쭉이와 뚱뚱이 소동'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하기도 했는데 이들의 별명을 모티브로 해서 국내판 제목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