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양정욱(梁正彧) |
생몰 | 1909년 10월 20일 ~ 1931년 11월 30일 |
출생지 |
경상남도
동래군 동면 복천리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
사망지 | 경상남도 동래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양정욱은 1909년 10월 20일 경상남도 동래군 동면 복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봄 부산제2상업학교에 재학하던 중 동교생인 김규직·윤태윤(尹兌潤)·윤병수(尹炳洙) 등 10여 명과 함께 민족정신의 함양과 항일투쟁을 목표로 비밀리에 독서회(讀書會)를 결성하였다. 그 뒤 매월 정기적으로 독서회를 개최하고 기관지 <흑조(黑潮)>를 매월 발행하여 동교 학우들에게 비밀리에 배포해 동지를 규합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그해 가을, 그는 독서회 활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김규직의 집에서 독서회원들을 모아놓고 논의한 끝에 독서회를 해소하고 흑조회(黑潮會)를 조직하는 한편, 조직 강화와 동지 규합, 적극적인 항일투쟁 전개 등을 목표로 사회인사와 학생들의 연대를 강화시키기로 결의했다. 또한 독서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매월 정기 회합을 갖고 비밀리에 월간지를 발행하여 학생과 일반인들을 회원으로 모집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28년 6월 18일 부산제2상업학교 일본인 교사의 반민족적인 교육을 계기로 흑조회 간부들과 함께 일본인 교사의 배척과 한국어 잡지와 신문의 구입 등을 조건으로 동맹휴교를 단행하는 등 반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후 그해 11월 29일 일본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에 다녀오던 중 귀국 연락선에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1929년 9월 24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후 부산형무소에서 악명높은 한인 형사 노덕술에게 가혹한 고문을 받다가 생명이 위독하여 1931년 11월 30일 병보석으로 가출옥했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곧 병사했다. 이때 양정욱과 함께 검거되었던 흑조회 대표 김규직, 유진흥 등 3명 역시 노덕술의 고문으로 인해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양정욱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