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44:01

양인항


성명 양인항(梁仁恒)
생몰 1870년 ~ ?
출생지 평안북도 구성군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양인항은 1870년생이며 평안북도 구성군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월 7일 최예락으로부터 독립선언서 500매와 주의서(主意書) 500매를 전달받고 최성진과 함께 시위에 쓰일 깃발을 제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두 사람은 지시대로 태극기와 독립기를 만들었고, 3월 11일 남시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했다. 이윽고 3월 11일 오후 2시경, 양인항은 최예락, 안승열(安承悅), 홍양천 등과 함께 시장 중앙에 태극기를 높이 달고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남시에 모인 1,000여 군중도 따라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일본 헌병들의 발포로 최성진(崔成珍)은 어깨뼈가 부서지고, 최예락,김진성(金振聲) 등 8명이 체포되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양인항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