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양동훈(楊東勳) |
본관 | 청주 양씨 |
생몰 | 1884년 5월 3일 ~ 1968년 9월 27일 |
출생지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마동리[1] |
사망지 | 전라남도 보성군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양동훈은 1884년 5월 3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마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8월 안규홍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송기휴(宋基休)와 더불어 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1908년 2월 파청 전투, 8월 24일 진산 전투, 8월 말 완봉 전투 등 일본군과의 연이은 전투에서 활약했지만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고흥으로 피한 뒤 일본군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유격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의병의 활동을 일본군에게 제보하는 한인 밀정들 때문에 갈수록 손실이 커졌고, 일본군이 고향을 떠난 의병들의 가족들을 위협하여 의병을 회유, 귀순시키기도 했다. 결국 안규홍은 의병대를 해산한 뒤 후일을 기약하다 헌병대에게 체포되었고, 양동훈은 만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8.15 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다 1968년 9월 27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양동훈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