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1 16:04:30

약령시

藥令市
Yangnyeongsi

1. 개관2. 어형3. 한약재 법령의 영향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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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약령시란 조선시대 효종 때부터 열린 한약재를 전문적으로 유통·판매하는 재래시장이다.

역사적으로 청주, 대전[1], 공주, 대구, 전주, 원주, 평양, 함흥 등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약령시와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일대에 위치한 약령시가 유명하다.

2. 어형

'영시(令市)’라고도 하는데 그 이름의 뜻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관(官)의 명에 따라서 개시(開市)하였기 때문에 영시 또는 약령시(藥令市)라 하였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향약재(鄕藥材)를 채취하는 기준을 월령이라 하는데 월령(月令), 즉 계절에 따라서 열리는 시장이라는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전자로 생각되고 있다.

3. 한약재 법령의 영향

한약재들은 현재의 한약재 관리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일정한 규정에 따른 포장없이 유통되었다. 물론 이에 따라 원산지나 생산 채취시기, 유통기한 표기 없이 유통되었다. 농민이 생산한 한약재를 판매업자들이 사들여 일반 농산물과 같이 특별한 품질검사 없이 단순 가공,포장하여 판매해왔다.

식약처는 한약재 중에 오랜 기간 밥상 위에 올랐고, 섭취 후 부작용이 적은 품목들을 골라 ‘식약공용한약재’로 구별해 유통과 판매를 장려하고 있다.[2] 이 목록에 있는 한약재들은 농가에서 직접 단순포장하여 식품용 한약재로 유통되기도 하고, 제약회사에서 산지에서 사들여 식약처에서 정한 의약품 품질 검사를 거쳐 포장되어 의약품용 한약재로 유통되기도 한다. 즉 같은 인삼,황기,대추,감초...라도 이원화되어 유통된다. 일반 소비자가 삼계탕집에서 먹는 삼계탕 속의 인삼, 대추나 집 앞의 마트에서 바로 사는 인삼, 대추는 식품용한약재일 확률이 높다. 한의원이나 한약방에서 쓰는 인삼, 대추는 법에 따라 좀 더 품질관리가 된 의약품용 한약재만 쓰게 되어 있다. 서울 제기동, 경북 영천, 충북 제천 등 전통약령시에서 일반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는 한약재는 원칙적으로 식약공용 한약재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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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약품 한약재 관리 정책 역사를 살펴보면, 1994년에 보건복지부는 식약청(현.식약처)에서 규정한 위해물질 검사 등의 품질검사를 통과한 약재만 사용토록 하고 그러한 한약재를 일정한 규격의 포장을 하여 그 포장에 약재이름, 공급자, 제조번호, 제조일자, 검사기관, 검사년월일, 원산지와 유통기한을 표기한 '한약규격품' 제도를 도입하였다. 하지만 한약재 생산 농가와 유통,판매 업체들이 새로운 제도에 충분히 정착할 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자가규격품', 즉 품질검사 의무없이 단순,가공 포장한 한약재 제품을 유통시키는 것을 허용하여 왔다. 즉 한약재 자가규격제는 농업인이 자체 생산한 한약재를 농가 단위 또는 판매업체가 단순 가공·포장해 판매할 것을 허용키로 한 제도다.

그러나, 일부 한약판매업자들이 자가규격제를 이용하여 저가의 불량 수입식품 한약재를 불법으로 들여오고, 원산지 위변조와 더불어 품질검사 없이 단순 가공,포장,판매함에 따라 잔류농약, 중금속 검출이 사회문제화 되면서 한약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가 저하되고 한의약 산업의 위축도 가져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2년 4월부터 모든 한방의료기관(한의원, 한방병원, 한약국 등)에서 500여 개가 넘는 모든 한약재를 '한약규격품' 으로만 사용하도록 법을 개정 실시하였다. 즉, 복지부가 자가규격제를 전면 폐지함에 따라 현재 의약품용 한약재의 가공·포장은 당국의 검사와 관리·감독을 받는 제조업체(제약 회사)만 가능하다.그리고 약업사들에게는 당귀, 천궁 등 국산 한약재 14가지에 대한 ‘한약재 자가규격품’ 사용을 금지하고 대신 제약회사들이 일괄 포장한 제품을 구입해 판매토록 했다.

그 결과 한의원, 한방병원들은 제약회사의 규격품만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약령시 약업사들은 가격 결정권 재량이 줄어들어 매출 감소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약령시 시장 활성화 대책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기사

4. 목록

약령시하면 대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조선 효종 9년인 1658년에 왕명으로 대구에 약령시가 설치된 후 전주, 원주 등지에 약령시가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후 대구만이 약령시의 맥을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온 것을 생각하면 약령시라고 하면 대구와 연결시키는 것이 대단히 자연스럽다. 물론 효종 당시 설치되었던 위치에서 자리를 옮겼고 한 때 시장이 폐쇄되어 시간적으로도 단절의 기간을 겪었지만 오늘날까지도 대구 약령시는 '약전골목'이라는 호칭으로도 널리 통용되고 있다.

서울 약령시는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낯선 명칭이다. 서울 약령시 보다는 아직도 '제기동 약재시장'이나 '경동시장 한약재거리' 등의 명칭이 더 익숙하다. 우선 대구약령시에 비해 역사가 짧다. 1960년 전후에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본다. 한국전쟁 때 파괴된 청량리역이 1959년에 신축되고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이 1968년에 문을 여는 등, 경기,강원지역 농산물 등이 이 일대로 유통되는 양이 늘고 물류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시장 규모는 계속 커져갔고, 1970년대에는 종로의 약재상과 한의원이 혼잡과 지가상승을 피해 이곳으로 몰리면서 한약재 집산지를 이루게 된다. 이후 전국 한약재의 많은 양이 유통되는 약재시장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지만 '약령시'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은 서울특별시에서 서울경동약령시 전통한약시장으로 지정한 1995년부터이다.


[1] 2010년 까지만 해도 중동 태전로 일대가 한약 거리였다. [2] 부자, 마황 등 잘못 쓰면 위험한 한약재들은 당연히 식품으로는 불가하여 의약품용 한약재로만 유통되어 한방의료기관에서만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