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30년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나 1953년 릿쿄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62∼95년 릿쿄대 교수로서 1962년에서 1995년까지 릿쿄대학 일반교육부에서 근무했다. 2017년 기준 릿교대학 명예교수.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가했다. # #2. 저서
-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 국가와 민중의 책임"이 이진희 교수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됐다. 간토대지진 대학살에 대한 저서로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조선인의 독립 운동을 두려워한 당시 일본 치안 당국은 조선인 폭동이라는 오보를 유포함과 동시에 계엄령하에 군대를 통해 조선인을 학살함으로써 일본 민중으로 하여금 조선인을 학살하도록 유도했으며, 학살을 자행한 민중 또한 이에 대한 직접적인 반성을 회피해 왔다. 이 글은 학살 자체 보다는 일본 국가와 민중의 사건 이후의 대응, 반성의 모습을 밝히는 데 중점을 두었다." #
- "가네코 후미코 -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제국의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저서. "가네코 후미코는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였던 박열의 사상적 동지이자 연인이며 옥중에서 결혼한 부인이다. 스물세 살의 나이에 옥중에서 자살이라고 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그녀의 삶과 사상 투쟁은 한 편의 ‘비극적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무적자(無籍者)로서, 여자로서, 나아가 밑바닥 삶을 살면서 자기의 뜻과 의지를 무시당한 아픔이 있었기에, 그녀에게 식민지 조선은 확대된 자아였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두 사람은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대학살을 무마하려고 일제가 조작한 ‘천황폭살사건’으로 법정에 서면서 세상에 알려진다. 식민지 청년 박열과의 사랑으로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가네코는 자기의 사상을 당당히 밝히는 법정 투쟁으로 일본 근대사상사에 기억되고 있다. 이 책은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의 삶을 그린 평전으로 역사학자인 저자 야마다 쇼지는 재판 기록과 후미코의 자서전, 당대의 신문과 잡지 등 방대한 자료들을 치밀하게 추적하여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재구성한다. 식민지하의 암울했던 시기를 살아간 가네코 후미코의 삶과 사상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준익 감독이 영화 박열을 만들면서 참조를 했다고 인터뷰 때마다 언급하여 화제가 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