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브너 더블데이 Abner Double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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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19년 6월 16일 |
미국 뉴욕주 볼스턴스파 | |
사망 | 1893년 1월 26일 (향년 73세) |
미국 뉴저지주 멘덤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소장 |
복무 기간 | 1842~1873 |
학력 | 미국육군사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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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뉴욕주 볼스턴스파에서 미국 하원의원 율리시스 F. 더블데이의 아들로 태어났고 1842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1846년 미국-멕시코 전쟁에 참전했고 1848년 플로리다의 원주민과의 전쟁인 세미놀 전쟁에도 참전했다.남북 전쟁당시 대위로 전쟁의 시발점이 된 섬터요새 공방전에서 대포로 남군에게 선제공격을 가했다. 1861년 소령으로 진급해 포병 부대를 지휘했다. 그리고 너새니얼 P. 뱅크스가 지휘하는 폰티액군의 포병대를 지휘했다. 1862년 준장으로 진급했고 앤티텀 전투등 남북전쟁의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다.
1863년 게티즈버그 전투 당시 세머리티 언덕에서 제2보병사단장으로 존 버퍼드준장이 이끄는 기병사단과 남군과 전투를 치르던 중 제1군단장 존 F. 레이놀즈 소장이 남군 샤프슈터에 머리를 저격당해 전사하자 대행임무를 수행했으며 5시간동안 치열한 격전을 펼치다가 남군이 퇴각했다. 이후 남군은 세머리티 언덕을 공격하지 않았고 이에 북군은 재정비해 이틀의 전투 끝에 승리했다.
게티즈버그 전투 첫째날 임시 군단장으로서 중요한 전공을 세웠지만 상관 조지 미드의 저평가로 인해 게티즈버그 전투 둘째날부터 더 서열이 낮은 존 뉴턴에게 군단장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이후 워싱턴 D.C. 방어에 관여하다가 종전을 맞이했다.
종전후 흑인들로 구성된 연대를 지휘했으며 1873년 소장으로 퇴역했다. 퇴역후 변호사일을 하며 남북전쟁의 회고록을 집필했다. 1893년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했으며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