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부치카르디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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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15대 |
이름 |
알베르토 부치카르디 페라리[1] (Alberto Buccicardi Ferrari) |
출생 | 1914년 5월 11일 |
산티아고 데 칠레 | |
사망 | 1970년 12월 8일 (향년 56세) |
국적 |
[[칠레| ]][[틀:국기| ]][[틀:국기| ]] |
포지션 | 미상 |
신체 | 170cm |
소속 구단 |
CD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 (1947) CD 라세레나 (1958-1960) |
감독 |
CD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 (1949-1950) 칠레 대표팀 (1950) CD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 (1958-1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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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칠레의 前 축구 선수 출신 감독.2. 생애[2]
2.1. 선수 생활
부치카르디는 CD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에서 선수로 뛴 경력이 있다.2.2. 감독
부치카르디는 1949년에 CD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가 처음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챔피언이 되었을 때의 감독이었다. 당시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에는 세르히오 리빙스톤, 호세 마누엘 모레노 등 남미에서 A급으로 꼽히는 선수들이 있었고 라이문도 인판테, 페르난도 리에라 같은 젊은 재능도 있었다. 부치카르디는 그들을 융합해 우승에 성공했다.부치카르디는 1950년 월드컵에서 칠레 대표팀을 지휘했고 칠레는 1승 2패,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2.3. 이후
부치카르디는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스포츠 저널리즘에 몸을 담았다.3. 매니징 스타일 & 평가
1950년 월드컵에서 부치카르디는 W-M 시스템의 센터백 3명이 서 있는 상대팀의 최종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고 필드 중앙을 통과하는 정확한 패스로 직접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때문에 칠레 대표팀에서 그의 축구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부치카르디가 제안한 축구는 유럽 스타일에 더 가까웠고 측면에서 수색하고 공을 숨기고 인내심을 갖고 골을 찾는 전통적인 칠레팀들과의 스타일과는 달랐다. 부치카르디의 축구는 단순하면서도 전술을 중시했고 공격적이기도 했다.CD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는 부치카르디를 기리는 의미로 2009년부터 그들의 훈련장에 부치카르디의 이름을 붙였다.
4. 수상
4.1. 감독
4.1.1. 클럽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1949( CD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
- 코파 칠레 준우승 1회: 1958(CD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