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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스 칸델라리오 Alexis Candelari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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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2년 5월 28일 ([age(1982-05-28)]세) |
아수아 |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포지션 | 투수 |
체격 | 188cm, 91kg |
투타 | 우투우타 |
소속팀 |
아길라 데 베라크루즈 (2016) 리미니 베이스볼[1] (2016) 서머셋 페트리어츠[2] (2016)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17) 테콜로테스 데 도스 라레도스 (2018) 사라페로스 데 살티요 (2019) 피라타스 데 캄페체 (2019) 가스트로니아 허니헌터스[3] (2021) 웨스트 버지니아 베이스볼[4] (2021) 켄터키 베이스볼[5] (2022) 마요스 데 나보호아[6] (2011/12~2012/13) 티부로네스 데 라 과이라[7] (2015/16) 에스트레야스 오리엔탈레스 (2016/17~2018/19) 아길라스 데 줄리아[8] (2019/20) 에스트레야스 오리엔탈레스 (2019/20~2020/21) 티그레스 데 아라과[9] (202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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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미니카 공화국 소속의 프로야구 선수. 역대 최고의 저니맨으로써 무려 9개국 야구를 경험하였다.2. 선수 경력
프로 경험이 거의 없던 불운한 선수였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기록조차 되지 않는 국가에서도 뛰었다.얼마 없는 기록에 의하면 18살에 멕시코로 진출하였다가 파나마 프로야구로 갔다고 한다. 그 후에 니카라과 프로야구로 갔다. 어느 년도에 어디에서 뛰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첫 기록은 그 후 2011~2013년까지 멕시코 태평양 리그에서 뛰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 시즌은 3경기에서 0승 1패 ERA 1.59, 두 번째 시즌은 6경기에서 0승 2패 ERA 6.43이 끝이었다.
이 후 2015년부터 베네수엘라에서 한 시즌 뛰었다. 14경기 3승 2패 ERA 2.16으로 호투한 후 2016년 서머리그 시즌부터는 네덜란드 야구 리그와 이탈리아 프로야구 리그, 멕시칸 리그, 미국 독립 리그에서 뛰다가 LA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공식전 등판 없이 몇 주 후에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계약을 맺고 그 해 말부터는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뛰었다 .
이탈리아 야구리그 성적은 7경기 4승 2패 ERA 1.88, 멕시칸리그 성적은 7경기 3승 1패 ERA 2.62, 독립리그 성적은 8경기 2승 1패 ERA 5.02, 도미니카 공화국 프로야구 리그 성적은 10경기에서 2승 3패 ERA 2.19.
이 사이 은퇴만 4번이나 하고 4번 다 결국 복귀했다고 한다. 은퇴했던 시기에는 인테리어 공사, 도로 공사, 주택 공사 등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10]
2.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2016년 12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약 22만 달러[11]에 1년 계약을 맺고 도미니카 윈터리그를 거쳐 2017시즌에는 일본으로 오게 되었다. 구단에서는 신비한 우완투수라고 언플했다.개막 초에는 2군에 있었다. 그러다가 5월 2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투수를 맡게 되어 1군에 콜업되었다. 그리고 그날 경기는 그냥 터졌다. 3이닝 동안 9피안타 2피홈런 2볼넷 6삼진 7실점을 기록하면서 신나게 두들겨 맞고 강판당하고 말았다. 평균자책점은 21.00. 당연히 그날의 패전 투수가 됐다.
삼진은 많고 볼넷은 적었지만 피안타가 은근히 많았고, 결정적인 순간 카이 타쿠야에게 만루홈런을, 우에바야시 세이지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은 게 컸다. 경기를 돌려보면 삼진이 많기는 했지만 도망다니는 피칭에 애매한 공은 죄다 커트당해서 투구수가 늘어졌고, 첫 2이닝 동안 이미 60구 가까이를 던진 상태였다. 결국 2회와 3회에 홈런 두 방을 맞고 7실점을 한 게 컸다.
당연히 그 경기를 끝으로 2군으로 쫓겨났다. 구단에서는 결국 울프와 함께 선발 요원을 맡아주길 원했던 그가 부진하자 새 선발 용병 스테판 파이프를 영입했다. 하지만 파이프도 5경기 정도 선발로 등판했지만 평자 6점대로 부진하면서 사이좋게 2군행.
2군에서는 17경기 2승 7패 ERA 4.98로 그저그런 모습만 보여주더니 결국 9월 11일 웨이버 공시. 똑같이 시즌 중반 이후 2군에만 박혀 있던 스테판 파이프는 세이부가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탈락 할 때까지 그냥 놔뒀는데 칸델라리오는 얼마나 구단이 빡쳤는지 시즌 후반에 그냥 방출해 버렸다.
2017 일본프로야구 1군 성적은 1경기 1선발 0승 1패 ERA 21.00. 참고로 whip이 3점대다.
얼마나 이 선수에 대해서 한이 맺혔는지 야후재팬의 세이부 외국인선수 기사 베댓 중 하나가 내년에는 올해마냥 칸델라리오 따위를 신비한 투수니 뭐니 하면서 놀지 말자였다.
육성선수로 입단해서 오랫동안 2~3군에서 두고봤다면 차라리 해볼 만했을 텐데 마이너리그 경험도 없는 선수를 멕시칸리그나 윈터리그 경력만 보고 즉전감으로 데려온 게 문제였던 것 같다.
3. 그 후
2018년엔 다시 멕시칸리그로 갔다. 보통 용병들의 선택지가 일본>한국>멕시코=대만>네덜란드=이탈리아 정도이고[12] 최소 대만급은 가야 해외 진출한 의미가 있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막바지까지 몰렸다.현재는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산하 마이너리그 중 하나인 도미니칸 하계리그의 투수코치로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2024-25시즌 도미니카 윈터리그 에스트레야스 오리엔탈레스의 불펜 코치로 부임하였다.
4. 여담
- 중남미 사람들은 보통 굉장히 혈기왕성하고 시끌벅적하며 감정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데, 칸델라리오는 말수도 많지 않고 감정표현도 잘 하지 않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가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외국 문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려고 시도하는 태도를 보이는 등 인성은 좋았다.
- 방출 이후 도미니카 공화국 프로야구 리그에서 뛰다가 일본 언론과 근황 인터뷰를 했다. 이때 일본에서의 생활이 매우 좋았다고 회상했으며, 2군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고 젊은 선수들도 잘 던졌다고 일본프로야구를 칭찬했다.
- 에이전트가 없이 본인이 직접 뛸 팀을 찾고 협상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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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좌우명은 아는 것이 힘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외국 문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려고 시도했던 것도 해외 야구리그에 돈을 벌기만 하러 간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와 사회를 알고자 했던 마인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 2ch 썰에 의하면 일본에서 뛰던 시절 에르네스토 메히아와 같이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어느 세이부 팬이 메히아만 알아보고 사인을 받은 후 지하철에서 내리려고 하니까 '나는?'[13]이라고 그 팬한테 물어봤다고 한다 근데 그 팬은 누군지 몰라서 그냥 무시하고 내렸다고 나중에 찾아보니까 칸델라리오인걸 알았다고 한다.
[1]
이탈리아 프로야구 리그 팀.
[2]
미국 독립 야구
애틀랜틱 리그 소속 팀.
스캇 맥그레거 등이 여기서 뛰었다.
[3]
미국 독립 야구
애틀랜틱 리그 소속
[4]
미국 독립 야구
애틀랜틱 리그 소속
[5]
미국 독립 야구
애틀랜틱 리그 소속
[6]
멕시코 태평양 리그
[7]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리그
[8]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리그
[9]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리그
[10]
일본에서의 인터뷰에 의하면 가족을 생각하여 복귀했다고 한다.
[11]
2500만 엔
[12]
네덜란드나 이탈리아 쯤 가면 그래도 프로 선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AA급의 연봉은 벌 수 있다.
[13]
원문은 俺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