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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프루드니코프

알렉세이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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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전북 현대 다이노스 엠블럼(1999).svg 전북 현대 다이노스 골키퍼 코치 (1999)

파일:수원 삼성 블루윙즈 엠블럼 (1998~2007).svg 수원 삼성 블루윙즈 골키퍼 코치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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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프루드니코프
Aleksei Pavlovich Prudnikov
파일:알렉세이프로필.jpg
K리그 등록명 알렉세이
출 생 1960년 3월 20일 ([age(1960-03-20)]세)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모스크바
국 적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신체조건 189cm
프로입단 1978년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직 업 前 축구선수( 골키퍼/은퇴)[1]
축구코치
소속 선수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1978~1982)
FC 디나모 모스크바 (1983~1987)
FC 토르페도 모스크바 (1988)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1989~1990)
FK 벨레즈 모스타르 (1990~1991)
FK 사라예보 (1991~1992)
FF 야로 (1993)/플레잉 코치
FC 발티카 칼리닌그라드 (1994)
콜로스 크라스노다르 (1995)
전북 다이노스 (1995~1998)/플레잉 코치
감독 전북 현대 다이노스 (1999)/골키퍼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0)/골키퍼 코치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2002)/골키퍼 코치
FK 베트라 (2005~2006)
심 모스크바 (2009)
PFC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 (2010)/골키퍼 코치
FC 오크젯페스 (2015~2017)/골키퍼 코치
FK 벨레즈 모스타르 (2018)/골키퍼 코치
FK 사라예보 (2019)/골키퍼 코치
국가대표 1987년 소련 국가대표팀 1경기 [2]
수상내역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K리그 이전3. K리그 활동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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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북 현대 모터스가 창단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5년간 선수 및 골키퍼 코치로 맹활약했던 선수.

2. K리그 이전

골키퍼로써 소비에트 톱 리그의 명문팀들을 두루 거친 선수였다. 1978년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데뷔했고, 이후 1983년 FC 디나모 모스크바로 이적해 1987년까지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그 129경기를 소화했다. 이 때가 그의 선수시절 최전성기로, 이때부터 1988 서울 올림픽 대회를 준비하던 소련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어 1987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를 소화했고, 1년 뒤 올림픽 최종 엔트리에 들어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다. 올림픽에서 백업 키퍼로 1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지만 소련이 금메달을 따면서 그도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그는 유고슬라비아로 행선지를 옮겨 FK 사라예보에서 한 시즌을 소화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에서 그 해 내전이 일어나며 다시 무대를 옮겨야했고, 이후 핀란드를 거쳐 러시아에 돌아와 선수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1995년 말, K리그에 새로 참가하게 된 신생팀 전북 현대 다이노스의 제안을 받고 K리그에 오게 된다.

3. K리그 활동

그의 행보는 신의손과 아주 비슷했다. 다만 시기가 맞지 않아서[3] 선수로서 많은 경기에 나서진 못했다. 그래도 신생팀 전북의 골키퍼진에게 자신의 기술을 남김없이 가르쳐주려고 노력했고 선수생활을 접은 후에도 1999년 전북의 전담 골키퍼 코치가 되었고, 2000년엔 수원으로 자리를 옮겨 골키퍼 코치를 보기도 했다.
파일:알렉세이 전북.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74px-Alexey_Prudnikov.jpg
2000년을 끝으로 한국을 떠나 러시아와 그리스 등에서 감독, 골키퍼 코치를 하며 지도자 생활을 하고있다.

4. 여담

  • 어릴적 스키선수 출신으로 러시아 스키 대표팀에 들어가는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축구에 흥미가 생겼고, 부모님 몰래 축구부에 들어갔다.

5. 관련 문서



[1] K리그, 56경기 70실점 [2] 소련 U-21 대표 1경기, 소련 올림픽대표 1경기 [3] 그가 왔던 1996 시즌부터 K리그에 외국인 골키퍼 제한 룰이 단계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팀 내 넘버 1 골키퍼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풀 타임 주전으로 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