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상원의원 (뉴욕 클래스 3) | ||||
제85-96대 제이콥 재비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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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105대 알 다마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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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118대 척 슈머 |
미합중국 제97-105대 연방 상원의원 알폰스 마르첼로 다마토 Alfonse Marcello D'Ama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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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81018> 출생 | 1937년 8월 1일 ([age(1937-08-01)]세) |
미국 뉴욕주 뉴욕시 브루클린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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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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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시라큐스 대학교 (B.S./L.L.B.) |
종교 | 천주교 |
가족 | 슬하 6명 |
경력 |
나소 카운티 행정관 연방 상원의원 (1981~1999 / 뉴욕)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장 (1995~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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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정치인. 뉴욕주의 3선 상원의원을 역임했다. 현재까지 뉴욕 주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을 지낸 마지막 인물이다.2. 생애
1937년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대학교에서 나오자마자 정치에 뛰어들었는데 당파적인 정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주민들의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는 생활 밀착형 정치를 했다. 뉴욕시의 교외 지역인 롱아일랜드 나소 카운티에서 오래 정치 활동을 하면서 지역 변호사가 되기도 했고, 주민들의 세금 징수나 자산 관리에 관해 꼼꼼히 처리를 해줘서 주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이를 바탕으로 1980년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상대는 5선을 준비하는 거물 상원의원 제이콥 재비츠였다. 알 다마토는 당파형 정치가가 아니라 풀뿌리형 지역 정치인이라 승리가 어렵다고 여겨졌는데, 제이콥 재비츠의 진보적인 성향에 불만을 품은 많은 뉴욕 주 보수파가 알 다마토를 지지해준 덕분에 알 다마토가 뉴욕주 공화당 후보 예비선거에서 재비츠를 꺾는 이변이 일어났다. 재비츠는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군소 정당인 뉴욕 자유당 소속으로 독자 출마를 감행했다. 그런데 이 때문에 민주당 엘리자베스 홀츠먼 후보로 가야했을 중도진보 표가 분산되었고 알 다마토는 1%p 차이로 홀츠먼을 꺾고 순식간에 무명 지역 정치가에서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도약했다.
상원으로서 제이콥 재비츠만큼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던건 아니었지만 지역구가 지역구였던만큼 기본적으로 성향은 중도였다. "마틴 루터 킹의 날" 공휴일 제정에 앞장섰고, 노동 문제에 관해서도 민주당과 뜻을 같이 했다. 또 로널드 레이건의 복지 삭감에도 반기를 들어 레이건의 신자유주의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며 필리버스터를 하는 등 초당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만, 뉴욕주의 높은 범죄율 때문에 범죄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히 강경한 성향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뉴욕에서 계속 압도적으로 재선되었는데, 이는 알 다마토가 청년 정치가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당파성을 고려한 정치를 한다라기보다는 지역 밀착형으로 주민들의 사정을 들어주는 스타일의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업스테이트 뉴욕부터 롱아일랜드, 뉴욕시까지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지역 주민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이를 해결하는 것을 주로 했는데, 이 때문에 민생 문제보다는 외교나 재정에 관련되어 굵직한 일을 맡는 상원의 자리에 안 어울린다는 비판도 약간 받았다. 그럼에도 묵묵히,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줘서 뉴욕 주민들에게 인기는 좋았다고 한다.
말년에는 상원보다는 주지사로 출마하는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나왔는데 본인은 거부하고 대신 자기가 키워주던 정치인인 조지 퍼타키를 밀어줬다. 조지 퍼타키는 94년 중간선거에서 3선 주지사 마리오 쿠오모를 꺾고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는데 그 배후에 알 다마토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조지 퍼타키 역시 중도적인 성향으로 유명했고 범죄에 관해 강경해 알 다마토의 후계자로 여겨졌다.
그렇게 3선에 성공했지만, 1998년 중간선거에서는 척 슈머에 밀려 떨어졌다. 척 슈머가 오랫동안 풀뿌리 운동으로 뉴욕주 주민들 사이에서 인망을 얻었고, 선거 막판에 알 다마토가 유대계 혈통인 척 슈머를 비난하며 유대교 비하 논란이 일어나 뉴욕 주 유권자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유대인의 표심이 출렁였기 때문이다.[1] 그래도 이후의 상원의원 선거에서 척 슈머를 지지해주는 통큰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중도보수적인 성향 답게, 2008년에는 존 매케인을, 2012년에는 밋 롬니를, 2016년에는 존 케이식을 공화당 경선에서 지지했다. 다만 반트럼프 성향인 조지 퍼타키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했으며 루디 줄리아니가 법무장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추천도 해줬다.
3.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0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뉴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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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9,652 (44.88%) | 당선 (1위) | 초선 |
1986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2,378,197 (56.90%) | 재선 | |||
1992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3,166,994 (49.03%) | 3선 | |||
1998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2,058,988 (44.08%) | 낙선 (2위) |
4. 여담
- 알 다마토가 진보적인 지역인 뉴욕에서 3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지역구 관리 능력 때문이었는데, 뉴욕주의 예산을 끌어오기 위해서라면 로널드 레이건에도 반기를 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지역구 관리에 공을 들였다. 그의 지역구 관리 능력은 상원 내에서도 유명해서 거의 워싱턴의 헨리 M. 잭슨/워런 매그누슨[2] 콤비, 웨스트버지니아의 로버트 버드/제이 록펠러 콤비 등을 제외하면 따라올 자가 없다고 여겨졌다.
- 1986년 필리버스터에서 워싱턴 D.C. 지역의 전화번호부를 읽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필리버스터는 미국 역사상 7번째로 긴 필리버스터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