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안시봉(安時鳳) |
생몰 | 1901년 10월 5일 ~ 1944년 8월 7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직산군 이동면 양대리 (현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양대리) |
사망지 | 대전형무소 |
위패 | 국립대전현충원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안시봉은 1901년 10월 5일 충청남도 직산군 이동면 양대리(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양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직산금광(稷山金鑛)의 광부로 일하던 중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양대리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이후 자태겡서 태극기를 만들며 거사를 준비한 그는 1919년 3월 20일 오전 10시경 양대리 장터에 나가 70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부르고, 이어 민옥석(閔玉錫) 등과 합세하여 입장장터로 몰려나가 300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다. 그러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언도받고 상고했으나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1920년 3월 25일에 출옥한 그는 동지 민창현 등과 함께 중국 동삼성 및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그러나 1943년 3월 26일 또다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8월 7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안시봉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 3일 국립대전현충원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