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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두르 구드욘센/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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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초창기( PSV 에인트호번, 아이슬란드 리그)1.2. 첼시 FC1.3. FC 바르셀로나1.4. 이후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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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이두르 구드욘센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

1.1. 초창기( PSV 에인트호번, 아이슬란드 리그)

아이슬란드의 발루르 레이캬비크라는 클럽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첫 시즌에만 17경기 7골을 집어넣은 그는 네덜란드의 명문 클럽이던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해 세 시즌 동안 뛰었으나, 당시 에인트호번에는 황제가 서식하고 있었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다시 아이슬란드의 KR 레이캬비크로 돌아간 그는 이번에는 디비전 1 볼턴 원더러스 FC의 러브콜을 받는다.

전형적인 잉글랜드식 뻥축구를 지향하던 당시의 볼턴 원더러스에서 남다른 테크닉을 보유한 구드욘센은 미친듯이 빛났다. 두 시즌 동안 73경기 26골을 기록하는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1999-2000 시즌에는 총 23골을 기록하며 2부리그 클럽이었던 볼턴의 리그 컵, FA 컵 4강행을 몸소 이끈다. 그리고 그해 여름, 첼시는 4m파운드를 지불하고 그를 영입한다.

1.2.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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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로 입단하게 된 입단 첫시즌인 2000-01 시즌 총 13골을 뽑아내며 준수한 프리미어리그 데뷔시즌을 보냈고, 이듬해인 2001-02 시즌엔 23골을 터뜨리며 첼시가 두 시즌 연속으로 6위권을 수성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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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 첼시의 공격은 지금도 회자되는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와 아이두르 구드욘센, 이 투톱이 중심을 잡았다. 하셀바잉크가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수비진을 박살내며 골을 넣었다면, 구드욘센은 후술하듯 뛰어난 박스 내부에서의 결정력으로 승부하는 타입이었다. 이 구드욘센-하셀바잉크의 투톱은 EPL 역사상 최고의 투톱에서 5위를 기록했다. 2000-01 시즌부터 2003-04 시즌까지 그들이 합작한 골은 무려 147골. 그리고 첼시도 2002-03 시즌엔 4위, 로만 구단주가 부임한 2003-04 시즌엔 2위, 챔스에선 4강까지 오르며 잉글랜드의 떠오르는 강자로 자리매김한다.

2004-05 시즌이 시작되고 전년도 성적이 아무래도 성에 안찬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펼치는 대개혁[1] 속에서 살아남았으나 당시 영입한 디디에 드록바와 전 시즌에 영입한 에르난 크레스포 등의 걸출한 스트라이커들과의 경쟁에 최전방 원톱의 자리를 내주고 주제 무리뉴의 포지션 변경에 따라 2선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런데 미드필더 진에서도 포텐이 터져 날카로운 공격가담 및 정확한 패스 능력을 선보이며 첼시의 2004-05 시즌의 우승에 크게 일조한다.[2] 무리뉴는 구드욘센에게 중앙에서 램파드, 마켈렐레의 패스를 이어받고 드록바, 더프 등의 공격 최일선 선수들에게 뿌려주는 역할, 즉 공격전환 빌드업에서의 중추역할을 맡겼고 그는 기대에 부응하며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다. 그리고 역대 최다 승점인 95점, 그리고 최소 실점 15점 등을 기록한 첼시는 단숨에 우승을 차지한다.[3] 챔스에서도 첼시는 16강전에서 외계인이 거주하던 바르사를 상대로 홈, 원정 합계 5대4로 짜릿하게 8강행을 따내고, 이어진 8강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박살내는 등 승승장구하다 4강 리버풀 FC 루이스 가르시아에게 석연찮은 골, 일명 유령골[4]을 먹으며 이스탄불로 향하는 길[5]의 여정을 멈추게 된다.

허나 구드욘센의 입지는 그 다음시즌인 2005-06 시즌 마이클 에시엔의 영입으로 크게 흔들렸다. 처음 영입할 당시에는 '이적료만 버렸다.' '벤치 멤버만 늘린다.'는 등 비난이 거셌던 에시엔이 괴물같은 활약을 펼치며 프랭크 램파드- 클로드 마켈렐레- 마이클 에시엔의 당시 유럽에서도 손꼽힐만한 중원을 완성하며 붙박이 주전으로 낙점되자 구드욘센이 완전히 벤치로 밀린 것이다.

결국 주전 자리를 잃고 로테이션 멤버로 전락한 구드욘센은 더군다나 시즌 종료 후 미하엘 발락이 영입되자 더 이상의 주전경쟁은 어렵다 판단하고 그 당시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날 때마다 치열하게 싸웠던 팀인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바르사는 헨리크 라르손의 대체자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자릴 잃은 그를 포착한 것.

1.3. FC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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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사 이적 첫시즌인 2006-07 시즌, 초반엔 무려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서 만난 친정팀 첼시에게 환상적인 골을 넣으며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여기서도 외계인, 신이 될 소년, 흑표범, 런던의 왕 소위 판타스틱 4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던 보얀 크르키치까지 포워드 경쟁에 참여하며 주전경쟁을 하게된다.[6]

주전 경쟁이 치열하던 때에도 2006-07 시즌 41경기, 2007-08 시즌 37경기 출전기록을 남길정도로 많이 출장했지만, 첼시 시절의 활약에 비하면 바르사에서의 퍼포먼스는 조금 부족했다. 2008-09 시즌 펩 과르디올라 부임 이후에는 무리뉴와 마찬가지로 구드욘센의 장점을 정확히 꿰뚫어본 펩에 의해 중용되지만,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뛰게 되면서 34경기 4골에 그치는 과거의 명성에는 걸맞지 않은 득점력을 거두게 되었지만 그래도 특유의 환상적인 볼터치에 이은 창의적인 패스 및 택배 같은 얼리 크로스 만큼은 일품이었다.

그러나 잔 부상 및 노쇠화로 인한 기량 폭락으로 2008-09 시즌을 끝으로 바르사에서의 선수생활을 마치게 된다.

1.4. 이후 행적

이후의 행보는 그야말로 저니맨 그 자체인데, 2009-10 시즌 2년 계약에 AS 모나코 FC로 이적했다가 여기에서 박주영[7]한테 밀려 결국 토트넘 홋스퍼 FC로 임대되었으며, 이후 리그에서 6개월 동안 11경기 1골이라는 극악의 성적을 남긴 채 시즌 종료 후 스토크 시티 FC로 이적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리그에서 단 4경기 출전에 그친 채 최상급의 노인정으로 전락 중인 풀럼 FC로 임대되었으나, 리그에서 10경기만 뛰는 미미한 존재감을 보이며 시즌 종료 이후 방출되었다.

그 뒤 2011년 2년 계약으로 수페르리가 엘라다 AEK 아테네 FC에 입단했으나, 역시 1시즌동안 리그에서 10경기 1골이라는 처참한 성적만을 남긴 채 1년만에 방출되며 먹튀로 전락했다. 이후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A 클뤼프 브뤼허 KV로 이적했는데 여기에서는 의외로 활약이 좋아서 반 시즌 사이에 리그에서 13경기 출전해 6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세웠다. 그 뒤 지역 라이벌이자 리그 명문인 클런 브뤼헤로 팀을 옮겼으며, 1년 6개월 동안 리그에서 45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하는 적절한 활약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수많은 찬사를 들어왔던 것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의 말년을 보냈으나, 그나마 마지막에는 그런대로 나은 활약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는 페이크고

자유계약 신분으로 있던 2014년 11월, 선수 초년기에 뛰었던 친정팀 볼튼에서 선수들과 함께 트레이닝 중 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은퇴를 번복하고 볼튼 원더러스 FC에서 재취업을 도전하시는듯. 2014년 12월 반 년짜리 계약을 마치고 입스위치 타운 FC전에 교체 출장하며 볼튼에서 14년만의 경기를 가졌는데, 공교롭게도 입스위치 타운은 2000년 5월 그가 볼튼 소속으로 마지막 경기를 가졌던 상대팀이다. 볼턴에서도 벨기에에서 보여준 클래스 있는 움직임을 선보이며 24경기에서 6골과 2어시스트를 기록. 볼턴에서의 2막을 마무리 했다.

2015년 7월 4일 중국 슈퍼 리그 스자좡 융창으로 이적하였다. 이후 2016년 2월 12일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이 이끄는 노르웨이 엘리테세리엔 몰데 FK로 이적하였다.

2017년 9월 10일 23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1] 이 과정 속에서 전임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두시즌 연속으로 득점왕을 따냈던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등이 팀을 떠났다. [2] 2004-05 시즌 당시 첼시는 탄탄한 수비와 양쪽 윙 포워드들의 미칠듯한 개인 기량을 통한 역습을 주 전술로 썼는데, 구드욘센은 그 구심점 역할을 맡았다. [3] 하지만 이 시즌에서 맨체스터 시티 쑨지하이에게 건 태클로 인해 그에게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힘으로서 맨시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던 그를 시즌아웃시켜버리기도 했다. [4] 골라인을 넘어갔는지의 여부에 관해 그 당시에도 말이 많았던 장면, 그러나 안 넘어가서 노골이었더라도 골키퍼 페트르 체흐는 퇴장이고 자동 PK상황이었다. 아무튼 리버풀 첼시 2000년대 라이벌리 관계를 형성한 중요한 사건. [5] 이 시즌이 이스탄불의 기적이 일어난 시즌이다. [6] 사실 판타스틱 4는 이름값은 엄청났지만 초기엔 말 그대로 외계인 그 자체였던 호나우지뉴의 불성실한 모습, 앙리의 노쇠화 등으로 2007-08시즌에 이르러서는 메시가 혼자 캐리할 정도의 막장화를 보여주었다. [7] 2009-10 시즌 박주영은 리그에서만 21경기 8골 3도움으로 팀 내 두 번째로 높은 공격 포인트를 달성하는 등 개인적으로도 최고의 시즌을 보낸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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