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00:03:51

아스날 FC/대한민국과 관련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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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2005년 박지성의 맨유 이적과 이영표의 토트넘 이적4. 2000년대 중반부터의 긴축 재정5. 2006년 독일 월드컵6. 박지성이 속한 맨유의 전성기7. 박주영 영입

1. 개요

잉글랜드 축구 클럽 아스날 FC와 대한민국과의 관련된 이야기를 설명하는 문서.

2. 상세

국내에서 박지성 프리미어 리그 진출 이전부터 팬층이 상당히 두꺼웠다. 대중적으로 아스날 팬층이 형성되기 시작한 계기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었다. 당시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네덜란드와 맞붙었는데, 0:5 참패가 충격적이었던 만큼 대조적으로 네덜란드의 경기력은 눈부신 것이었고, 당시 네덜란드 에이스였던 베르캄프의 소속팀 아스날에까지 관심이 이어진 것이었다.

네덜란드와의 경기는 한국 축구팬들에게 단순한 '충격' 이상이었다. 한국축구가 세계수준과의 격차를 실감한 사실상의 첫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 월드컵 이전에도 한국이 세계강호와 맞붙은 적은 있었다. 86년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해당 대회 우승팀)와 이탈리아(전대회인 82년 대회 우승팀), 90년에는 스페인, 94년에도 스페인과 독일(전대회인 90년 대회 우승팀) 등과 같은 조에 속했다. 물론 86년 아르헨티나전 1:3패, 90년 스페인전 1:3패 등 대패가 있긴 했지만, 이 경기들은 충격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전력을 고려할 때 그냥 예상되던 결과들이었다.

프랑스 월드컵은 대회 전부터 대표팀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대표팀이 94년 대회에서 선전했고, 96년에는 2002월드컵을 유치했으며, 98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무난하게 월드컵 진출권을 따냈기 때문이었다. 94년에 대표팀은 스페인에 0:2로 지다 2:2 극적인 무승부를 거두는가 하면, 독일전에서는 0:3으로 뒤지다 후반엔 전 대회(90년) 우승팀을 상대로 경기를 지배하다시피하며 스코어를 2:3까지 따라잡았다. 아쉽게 16강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고무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한편 98년 대회 예선에서는 탈락의 위기에 몰렸다가 극적으로 월드컵에 진출한 94년 대회 예선과 달리 (94년 대회 예선에서는 예선 최종라운드 직전까지 일본의 월드컵 진출이 유력했지만, 최종전 후반 추가시간에 이라크가 일본에게 골을 넣으며 결국 한국이 월드컵에 진출했다. 흔히 '도하의 기적'으로 불리는 사건이다.) 편안하게 대회진출을 확정지었다. 가장 어려운 일정인 도쿄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며 ('도쿄 대첩'으로 알려진 경기다) 이후 별다른 위기도 없었다. 거기다 그간 우리나라가 조별예선에서 만났던 전현대회 우승팀들(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독일)보다 전력이 아래라고 여겨지고, 월드컵 우승경력 한번 없는, 심지어 우리보다 피파랭킹(당시 한국 20위, 네덜란드 25위)도 낮았던 네덜란드와의 조편성은 16강에 진출할 만한 기회라고 여기게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0:5 참패였다. 이 패배로 현실을 절감하고, 팬들의 눈에 띈 게 네덜란드 대표팀(이때를 계기로 네덜란드 대표팀 팬도 늘었다.)과 베르캄프였다. 당시 베르캄프는 언론에서 세계 4대 스트라이커(베르캄프, 시어러, 바티스투타, 호나우두)라는 타이틀로 조명되고 있었고올리사데베와는 다르다 올리사데베와는, 일부 팬들은 베르캄프의 소속팀이던 아스날에까지 관심을 넓혀갔다. 덧붙이자면, 이때 베르캄프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는가 하면, 90년대-2000년대 인기 연예인 중 한명이었던 배우 이본씨가 티비에서 베르캄프의 팬이라고 언급한 적도 있다.

당시 유행하던 게임의 영향도 일부 있었다. 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트레블을 기록한다. 98년 월드컵과 이어진 유로 2000과 맞물려 해외축구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99년 맨유의 트레블은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 그러면서 EA 스포츠의 피파도 국내에서 유행했는데, 클럽팀 경기의 초기 설정이 맨유 대 아스날이었다. 맨유팬만큼은 아니었어도 아스날팬도 생기기 시작했다. 역시 홍대병

그런데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고 급속히 이쪽 팬층이 늘어나게 되자, 라이벌 팀인 만큼 '맨유의 우승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라이벌'이라는 이유 등으로 아스날의 안티가 급속도로 증가하기도 했다. 더불어서 2011년도 여름 이적 시장에 한국의 국대 주장 박주영이 영입되었으니 어느 정도 이런 경향이 바뀔 수도 있겠다고 기대되었지만, 박주영을 영입한 뒤, 전력 외 선수로 분류되어 출전 기회가 거의 없게 되자 오히려 더 늘어나 버리기도 했다.

맨유에 소속된 박지성의 영향 때문인지 일부 한국인들에게는 묘하게 악당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데 아스날 팬들은 이 때문에 다른 클럽 팬들보다도 죽을 맛이다. 근데 한국선수 오는 거 국뽕유입 때문에 싫다며? 그럼 그냥 견뎌야지 뭐.. 언론 및 포털 사이트에 기재되는 기사는 친(親) 맨유 성향을 지닌게 상당히 많은지라 맨유의 리그 라이벌인 아스날은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는 게 대다수이며, 이적설을 다룬 기사 등에서도 하염없이 까이기도...

게다가 현재는 손흥민 토트넘 홋스퍼에서 활약 중인데 하필 아스날은 토트넘의 라이벌이라서 아직도 까인다. 2024년에는 강원FC의 유망주 양민혁까지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하여 이러한 상황이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3. 2005년 박지성의 맨유 이적과 이영표의 토트넘 이적

전통적인 라이벌이 아니었던 맨유와 아스날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6년간 프리미어 리그 1, 2위를 독식하면서 새로운 우승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특히 이때 맨유와 아스날의 새로운 라이벌 관계는 터널 충돌 사건, 피자 게이트 사건, 뤼트 판니스텔로이 사건 등 오히려 전통적인 라이벌보다도 더 뜨거운 상황이 되었을 정도.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선수인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하고 아스날은 말 그대로 본의 아니게 신규 맨유 팬들에게조차 악역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그리고 진짜로 전통적인 라이벌 토트넘 홋스퍼 FC 이영표를 영입하게 되면서 졸지에 아스날은 신 라이벌 구 라이벌 양쪽에서 코리안들에게 협공당하는 모양세가 되어 버렸다. 거기다 감독 아르센 벵거가 J리그 출신이고, 아스날에는 지속적으로 일본인 선수가 있었다. 가장 유명한 이나모토 준이치를 비롯해 미야이치 료, 아사노 타쿠미, 현재 토미야스 타케히로까지 일본인 선수가 계속해서 소속돼 왔다. 근데 쓰고 보니 진짜 반한(反韓)클럽이네..

아스날을 비하할 때 "개집"이라고 하는 것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욕이 '개~~'였고 자연스레 이게 자연스러워? 아스날 선수들을 '개xx들', 구단 자체를 '개스날' 등으로 부르게 된 것. 문제는 대부분의 타 팀들 멸칭과 달리 유독 이 개집이란 용어는 별 의미 없이 어감이 찰져서 이게 찰져? 쓰인 거라, 아직도 아스날의 멸칭에 대한 유래를 가지고 뜬금없이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경우가 잦다.

4. 2000년대 중반부터의 긴축 재정

하필 박지성이 맨유에 이적한 타이밍 즈음부터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으로 경기장을 옮기며 아스날은 2013-14 시즌 전까지 본격적으로 기나긴 긴축 재정에 들어선다. 퍼거슨과의 상대 전적도 앞섰고, 계속 우승 경쟁을 하던 팀은 슬슬 위력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2008-09 시즌을 끝으로 결국 4/16[1], 실패 전문 팀 혹은 감독 등으로 조롱받기 시작한다.

5. 2006년 독일 월드컵

그 전 월드컵에서 4강까지 진출한 터라 한국 국민의 월드컵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는 하늘을 찌를듯했는데 조별 리그에서 한국을 상대할 토고, 프랑스, 스위스의 주축 선수로 아스날의 아데바요르, 앙리, 센데로스 등이 있자 한국 언론은 이런 식의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언론에 의해 이런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한국 국민은 마치 맨유를 응원하면 한국을 응원하는 것이고 아스날을 응원하면 매국노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고,자연스레 프리미어 리그에 관심없던 사람들에겐 아스날의 이미지가 나빠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앙리와 센데로스가 한국을 상대로 득점하고 한국이 결국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게 되자 당시 들끓었던 반스위스 여론과 함께 아스날을 응원하는 것은 매국노와 같다는 반아스날 여론이 들끓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아스날 비난 글도 더 많아지고, 아스날 팬들은 더더욱 고생하기 시작하게 된다.

6. 박지성이 속한 맨유의 전성기

이미 독일 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 팬들은 '맨유 응원=애국, 아스날 응원=매국'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슬로건처럼 내세우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맨유는 프리미어 리그 3연패에 챔피언스 리그 3연속 4강 진출이라는 전성기를 맞았고 박지성도 속해 있었으니... 프리미어 리그 팬 10명 중 거의 7명이 맨유를 응원하고, 맨유의 라이벌들인 BIG 4 일원인 아스날, 첼시, 리버풀은 자연스럽게 악역을 담당하게 된것은 당연할 터.

더불어서 프리미어 리그를 보는 팬들이 늘어난 만큼 팬층도 두꺼워졌지만 늘어난 팬층을 나눠가졌으니 늘 기사에는 이들 클럽들을 까는 글이 넘칠 수밖에...[2] 이러한 배경에서 당시 가장 미움을 받은 스무 번째로 사랑받는 구단은 아스날이었다. 아스날은 2006-07 시즌에서 맨유를 상대로 더블을 기록했고, 2007-08 시즌에 맨유와 리그 우승을 다투고, 2008-09 시즌에 맨유와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맞붙었기 때문.

따라서 아스날을 응원하면 매국노 취급받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7. 박주영 영입

릴로 갈 것이라고 기정사실화되어 있던 박주영이 아스날에 입단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아스날의 인기도 폭증하는가 싶었지만 벵거의 성향을 알고, 아스날의 방침에도 맞지 않는 다소 의문스러운 영입임을 알고 있는 아스날 팬들은 이 부분을 걱정하기도 했다. 원톱 체제에 3옵션 공격수라니. 만약 박주영이 주전 경쟁에서 뒤쳐져서 출전 기회를 거의 잡지 못하면 정반대 효과를 낳게 되기 때문. 일말의 희망이 주전 공격수인 반 페르시가 부상으로 결장하는 경기가 많다는 것이었는데, 전 시즌까지 부상 때문에 시즌을 반만 소화한다고 '시즌 반(半)'페르시라고 조롱받던 반페르시는 이 시즌에 거의 모든 경기를 소화했다. 풀페르시로 강화!

아스날을 오래 응원한 마니아들이라면 어느 정도 현실성 높았던 걱정은 결국 박주영이 벵거 감독의 눈에 띄지 못하고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경기인 마르세유 원정 이후, 완전히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자 현실이 되고 말았다. 더불어서 리그 출전보다도 벤치를 달구거나 리저브 경기에서 뛰는 기사 등이 매일 같이 터지면서 아스날을 비난하는 댓글과 기사들은 절정에 치닫게 되었다.

아스날에 비우호적인 여론이 어느정도였냐면, 평소 유럽축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원로 배우 강부자 토크쇼에 나와서 아스날과 벵거 감독에 서운함을 표현할 정도였다.

이와 함께 박주영 팬들에게 아스날은 박주영을 괜히 데려가서는 1년 동안 쓰지도 않아 폼을 망하게 한 한국 축구의 역적이다. 박주영에게 출전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아스날 돈 많냐? 그 정도는...있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는 기사까지 나올 지경이 되었고, 국내 언론을 통해 박주영을 놓고 아스날에서 한국 기업을 후원 기업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기사까지 나오면서 언론과 한국 네티즌 중 아스날을 싫어하는 팬들, 박주영 팬들에게 엄청나게 비난을 받게 되었다.

더불어서 아스날 팬들이 사소하게 올리는 개인 블로그, 홈피 등에도 이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 도배되어 아스날 팬들의 수난은 이루 말할 수 없게 고난의 나날이었을 정도.

이는 과거 조원희가 위건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을 때나 이동국이 미들즈브러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고, 아스날에 대한 비난글들은 마녀사냥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심했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 한 마디로 아스날 팬인데 아스날 팬이라 하지 못하고...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확연히 떨어진 기량 및 임대한 팀에서도 회복되지 않는 기량과 불성실한 행동, 선수로서 경기에 뛰려고 노력하지 않는 모습 , 병역 관련해서 일어난 사건들 등으로 인해 박주영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뱅거가 옳았다."와 같이 되려 박주영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쪽으로 아스날 팬들이 프레임을 잡은 이후로 아스날쪽의 여론이 더 좋아졌던 때도 있었지만 박주영의 이미지 하락의 원인이었던 브라질 월드컵이 수 년이 지나면서 잊혔고 오히려 과거의 국대에서의 활약이 그립다는 여론이 늘어났고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지면서 박주영 관련 여론은 50 대 50 정도로 팽팽한 편.


[1] 리그 4위, 챔스 16강만 반복하는 성적을 빗댄 밈이다. [2] 토트넘, 에버튼, 뉴캐슬이나 최근 신흥 강호로 떠오른 첼시와 맨시티를 국내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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