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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오 아보가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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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오 아보가드로
Amedeo Avogadro
파일:598px-Amedeo_Avogadro2.jpg
본명 로렌초 로마노 아메데오 카를로 아보가드로 디 콰레콰 에 디 세레토
Lorenzo Romano Amedeo Carlo Avogadro di Quaregna e di Cerreto
출생 1776년 8월 9일
파일:사보이아 공국 국기.svg 사보이아 공국 토리노
사망 1856년 7월 9일 (향년 79세)
파일:사르데냐 왕국 국기.svg 사르데냐 왕국 토리노
직업 법률가 → 과학자
분야 물리학, 화학
종교 가톨릭
서명 파일:아메데오 아보가드로 서명.svg

1. 개요2. 생애3. 기타4.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 사르데냐 왕국[1] 물리학자, 화학자.

2. 생애

처음에는 법률가 겸 의회의원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법률가가 되었으나, 수학 물리학독학으로 공부하여 토리노 대학교의 수리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도량형 위원회 등 정부 기관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몰 개념이 사실 이 사람의 작품이다. 몰 개념 자체가 모든 기체 분자는 같은 부피에 같은 수만큼 들어 있다는 아보가드로의 법칙을 전제한 개념. 근데 대부분 전공자들은 몰 개념만 기억하고 아보가드로의 법칙은 잊어버리는 일이 많다.

아보가드로는 1811년에 프랑스의 Journal de physique에 Essai d'une manière de déterminer les masses relatives des molécules élémentaires des corps, et les proportions selon lesquelles elles entrent dans ces combinaisons( 단위입자의 상대적 질량 및 이들의 결합비를 결정하는 하나의 방법)라는 이름의 논문을 제출하면서 이 법칙을 주장하였다. 처음에 이 법칙은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아보가드로 사후 1860년 스타니슬라오 칸니차로가 카를스루에의 화학국제회의에서 아보가드로의 법칙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아보가드로는 이 논문에서 존 돌턴의 원자론에 입각하여 1808년에 발견된 루이 조제프 게이뤼삭 기체 반응의 법칙을 기초로 하여 원자설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외에도 현대 화학에서의 분자설을 맨 처음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고 사후에 제자였던 스타니슬라오 칸니차로[2]에 의해 인정받은 역사가 있다.

1811년에 물, 질산, 아질산, 암모니아, 일산화 탄소, 염화 수소의 올바른 분자식을 제시하였으며, 1814년에는 이산화 탄소, 이황화 탄소, 이산화 황, 황화 수소의 분자식을 제시하였다. 이 외에도 자신이 개발한 법칙을 금속에도 적용하여 17종류의 금속의 원자량을 계산하기도 하였다.

외국어에 능통하여 프랑스어로 저술한 논문이 많았으나[3], 살아있을 때에는 다른 화학자들과의 소극적인 접촉과 논문을 작성할 때 자신의 논문을 인용하는 버릇으로 인해서 이탈리아 내외에서 유명하지는 않았다. 말년인 1850년에 토리노 대학교 교수 자리에서 은퇴하였고, 1856년 토리노에서 사망하였다.

3. 기타

  •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분자 설계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링크
  • 초상화가 개성적으로 생겼다 보니 삽화에서 초상화 모습과 비슷한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 몇몇 마트에서는 아보카도에 이름표를 아보가드로라고 붙여서 판다. 링크 당연하지만 틀린 표기인데 애초에 아보카도의 영문명인 Avocado에서는 도저히 "가드로" 발음이 나올 수가 없다.

4. 같이 보기



[1] 그가 죽은 후 3년 뒤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추진하여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된다. [2] Stanislao Cannizzaro, 1826–1910. [3] 당시에는 프랑스어가 국제어기도 했고, 아보가드로가 살았던 사르데냐 왕국 나폴레옹 전쟁 시기 사르데냐를 제외한 국토가 프랑스에게 점령당해 프랑스 영향이 제법 강했다. 애초에 사르데냐 왕국을 통치했던 사보이아 가문 프랑스계였다가 16세기를 기점으로 이탈리아화한 집안이고, 사르데냐 왕국의 전신인 사보이아 공국 시절부터 항상 프랑스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