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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연 로번/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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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린 시절3. FC 흐로닝언4. PSV 에인트호번5. 첼시 FC
5.1. 2004-05 시즌5.2. 2005-06 시즌5.3. 2006-07 시즌
6. 레알 마드리드 CF
6.1. 2007-08 시즌6.2. 2008-09 시즌
7. FC 바이에른 뮌헨8. FC 흐로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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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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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연 로번의 클럽 경력을 다룬 문서.

2. 어린 시절

로번은 네덜란드 북동부 흐로닝언의 위성 도시인 베뒴 출신이였기에 로번은 어린 시절부터 VV 베뒴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하였으며, 로번은 공 제어 능력과 뛰어난 발재간으로 그의 가치를 증명하였고, 흐로닝언은 로번을 재빨리 영입하였다. 그곳에서, 로번은 오른쪽에서 안쪽으로 끊는 특이한 방법으로 경기를 전개한 후 왼발로 공을 쏘아 수 차례 인상적인 골을 만들어냈다.

3. FC 흐로닝언

흐로닝언은 1999-2000 시즌에 로번을 1군으로 올렸다. 로번은 리그에서 3골을 기록하였다. 2000-01 시즌에 18경기 선발로 출전했고, 2골을 득점하였다. 2001-02 시즌에도 흐로닝언에 남아 기량을 서서히 끌어올렸고, 28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득점하였다. 그리고 로번은 2002-03 시즌을 앞둔다.

4. PSV 에인트호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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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로닝언에서 18세의 나이에 자신의 이름 스펠링을 틀린 아약스를 거절하고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하여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그리고 박지성, 이영표와 같이 뛰었던 경험이 있다. 20세의 어린 나이임에도 빠른 드리블과 강력한 왼발을 주무기로 아인트호벤의 에레디비지 더블을 이끌었다. 이미 약관의 나이에 네덜란드 리그 최고 수준에 도달해 차후 빅리그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유망주였다.

이런 활약으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로번을 영입하기 위해 OT도 방문시키면서 그를 데려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적료의 금전 문제로 협상이 틀어졌고, 이 틈을 안 놓치고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신흥 강호 첼시 FC가 로번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5.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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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경기 19골 21도움
2004년에 PSV 에인트호번에 함께 뛰던 마테야 케즈만과 같이 이적. 첼시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플라잉 더치맨이란 별명을 얻었다.[1]

5.1. 2004-05 시즌

2004-05 시즌 데미안 더프와의 콤비는 환상적이었으며, 둘은 다이나믹 듀오라 불린 공격라인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유리몸인지라 잦은 결장이 흠이었다. 다음 시즌에는 조 콜도 윙어로 뛰면서 양쪽 윙 무한 로테이션으로 맹활약했다.

2004-05 시즌: 29경기(선발 19경기) 9골 10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리그 18 14 4 7 9
챔피언스 리그 5 2 3 1 0
FA컵 2 0 2 0 0
칼링컵 4 3 1 1 1
합계 29 19 10 9 10

5.2. 2005-06 시즌

왼쪽 윙으로서 폭발적인 스피드와 유연성, 강력한 왼발로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첼시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틈만 나면 FC Hospital로 임대를 가는지라 팬들은 그의 복귀나 기다리는 처지가 되곤 했다. 그래도 복귀만 하면 늘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기 때문에 첼시 팬들이 유리몸 때문에 힘들어하는 일은 없었다.

2005-06 시즌: 40경기(선발 31경기) 7골 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리그 28 21 7 6 3
챔피언스 리그 6 6 0 0 0
FA컵 4 2 2 1 1
칼링컵 1 1 0 0 1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40 31 9 7 5

5.3. 2006-07 시즌

하지만 2006/2007시즌 안드리 셰브첸코 미하엘 발락이 영입되면서 주제 무리뉴 감독은 본인이 원하는 전술인 4-3-3 포메이션 대신 4-1-2-1-2 포메이션을 사용할 수 밖에 없게되자, 로번이 벤치로 밀려났고 주로 후반에 조커로 기용되었다. 특히나 발락은 둘째치고[2] 셰브첸코는 구단주 로만이 직접 감행한 영입이었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용해야되는 입장이었는데 문제는 4-3-3의 센터포워드를 맡기엔 당시 포스트 플레이에 능하고 포텐이 제대로 터진 디디에 드록바가 있었으며 윙으로 배치하기에는 셰브첸코는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첼시는 셰브첸코를 조금씩 포기하고 드록바 원톱에 주요하여 다시 4-3-3 전술로 회귀했으며 로번은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데미언 더프가 주전경쟁에서 밀려 뉴캐슬로 이적하고 조 콜이 프리시즌 경기에서 입은 중부상을 겪은뒤로 계속해서 부진한 가운데 정상급 윙어라고는 로번 한명이었는데 이것이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날에는 오히려 로번에 대한 의존도를 더 높게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3]

여담으로 이 당시 주 포지션은 왼쪽 윙이었지만 오른쪽에서도 간간히 뛰었고 이때부터 이미 오른쪽에서 플레이 시에는 그의 매크로 패턴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6-07 시즌: 37경기(선발 24경기) 3골 6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리그 21 16 5 2 4
챔피언스 리그 8 3 5 1 1
FA컵 4 2 2 0 0
칼링컵 3 2 1 0 1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37 24 13 3 6

6. 레알 마드리드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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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65경기 13골 12도움

6.1. 2007-08 시즌

2007년에 레알로 이적하면서 이전보다 오른쪽으로 자주 이동해 직접 골을 노리는 빈도가 높아졌다. 세비야 FC 아틀레틱 빌바오전에서 소름돋는 스피드로 득점을 올리더니 비야레알과의 홈경기에서 전매특허인 중앙으로 치달하며 왼발슛으로 디에고 로페즈를 무너뜨리고 결승골까지 넣었다. 엘 클라시코에서도 에릭 아비달을 엄청난 스피드로 농락하며 레알의 공격을 이끄는 등 2006-07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2007/08시즌: 28경기 5골 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 리가 21 12 9 4 3
챔피언스 리그 5 2 3 0 0
코파 델 레이 2 2 0 1 1
수페르코파 - - - - -
합계 28 16 12 5 4

6.2. 2008-09 시즌

첼시 시절과 마찬가지로 잦은 부상으로 꾸준히 팀에 공헌하는 기회가 줄어들긴 했지만 나올 때마다 번뜩이는 모습은 여전했다. 2008-09 시즌 초반 팀은 부진을 거듭하며 감독 경질이라는 위기까지 갔으나 중후반기에 로번 특유의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는 드리블과 슈팅으로 공격포인트를 적립하여 당시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와의 우승경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비록 홈에서 열린 엘클라시코에서 2-6으로 대패해 우승이 물 건너갔다.

2009년 레알이 엄청난 공을 들여 영입한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은 갈락티코 시즌2의 시작과 함께 중앙에는 카카, 오른쪽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은 로번으로 두는 4-2-3-1 전술을 구상했다. 허나 로번은 국대 동료들인 클라스 얀 훈텔라르, 뤼트 판니스텔로이, 라파엘 반 더 바르트, 베슬리 스네이더르 등이 카카가 들어오자마자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4] 쓸려나갈 기미를 보였고, 그 꼴을 참지 못해 자신의 에이전트이자 아버지인 한스 로번에게 이적할 구단을 물색하라고 요청. 레알의 신임감독 페예그리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9-10 시즌이 개막했지만 이적시장이 닫히기 전에 분데스리가의 거함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5]

2008/09시즌: 37경기 8골 8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 리가 29 25 4 7 6
챔피언스 리그 6 5 1 1 1
코파 델 레이 - - - - -
수페르코파 2 1 1 0 1
합계 37 31 6 8 8

7. FC 바이에른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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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309경기 144골 81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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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FC 흐로닝언

파일:Robben_return2.jpg
파일:Robben_return.jpg

선수 생활을 마감한 지 1년 만에 은퇴를 번복하고 2020/21 시즌부터 자신의 첫 클럽인 흐로닝언에 선수로 복귀하게 되었다. # 최근 몇 주 간 흐로닝언의 화상 훈련에 참가하고 있었고, 뮌헨에서도 계속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 19 시국 속에서 친정팀에 도움을 주기 위해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고 한다. 이미 영광을 누릴만큼 누리고 돈도 많이 번 유명 선수들이 은퇴했다가 친정팀으로 복귀하는 방식의 경우 주급을 의도적으로 적게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로번이 이런 케이스다. 등번호는 10번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프리시즌 경기에서 전반 13분만에 주장으로써, 복귀골을 신고했다. 친정팀 뮌헨의 트레블 응원 영상에서는 레반도프스키보고 챔스 우승하고 흐로닝언으로 오라고 했다.

그러나 9월 19일 에레디비시 20-21 시즌 개막전에서 선발출전해 30분만에 사타구니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아웃되고 말았다.

10월 18일 5라운드에 교체투입되어 복귀했지만 이후에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후 해가 지나 2021년 4월 11일에 복귀하였다. 여담으로 바이에른 뮌헨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토마스 뮐러가 로번의 복귀 소식을 듣고 축하해주면서 파리 생제르맹과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조커로 나와달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6] 이후 이틀 뒤에 이 소식을 확인한 로번은 준결승과 결승전은 나의 몫이라며 화답하였고, 1차전의 패배에도 바이에른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전 소속팀에게 행운을 빌어주기도 했다. # 다만 바이에른 뮌헨은 1차전 홈 패배의 아픔을 딛고 2차전 원정에서 1:0으로 승리했지만, 원정 다득점에서 밀리면서 8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결국 2021년 7월 15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1] 이 별명의 원조는 마크 오베르마스다. [2]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것이라 이적료가 전혀 들지 않았고 첼시의 미드필더진은 매우 튼튼 했던 관계로 발락이 서둘러 첼시에 자리잡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3] 아이러니하게도 첼시의 이런 크랙형 선수의 부재는 로번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후 대체선수를 찾지못해 더욱더 심화되었고 심지어 2008/2009시즌 스콜라리가 첼시를 이끌던 시절에는 준수한 돌파력과 스피드를 갖췄던 주제 보싱와에게 의존도가 쏠리기도 했다. 로번이 첼시를 떠나고 6년 뒤, 첼시는 드디어 로번의 클래스와 맞먹는 초특급 유망주 크랙형 선수를 영입했고 아자르는 로번보다 첼시에서 더 오래 뛰며 맹활약한다. [4] 분데스리가 시절 함부르크의 주장이었던 반 더 바르트는 레알에 남아 카카의 백업으로 벤치 신세였다가 그의 부상을 틈타서야 경기 출전을 노리다 이적했고, 스네이더는 인테르로 이적해 팀의 핵심으로 펄펄 날아다니더니 트레블의 위업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당시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 인테르가 바르셀로나에게 3-1 대승을 거둔 이후 감독인 주제 무리뉴까지 나서서 레알에게 감사를 표했다. [5] 레알의 네덜란드 커넥션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한것은 사실이지만, 그나마 로번이 반니와 함께 레알에서 가장 잘 해줬다. 엄밀히 말해 네덜란드 커넥션이 망한 것도 드렌테를 제외하면 실력보단 기회도 잘 안주고 제대로 써먹지 못한 탓이 컸다. 델 보스케를 떠나 보낸 이후 레알은 돈을 많이 쓰는 팀이지 잘 쓰는 팀은 아니었다. [6] 주포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 윙어 세르주 그나브리가 각각 무릎 부상과 코로나 19에 감염되어 출전할 수 없고 그 외에도 부상자들이 상당히 많아서 팀 상황이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