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년 ~ 204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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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자정(子正)으로 양주 오군 출신.2. 생애
어려서부터 천재로 이름 높았다. 지방의 풍속을 순시하던 화흠은 당시 11살이었던 심우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심랑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수레에 같이 타고 가면서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으나 심우는 "조정의 명에 따라 예로서 교화를 널리 펴면서 풍속을 바로잡아야 할 선생께서 예의에 벗어나 경박한 행동을 하고 있다." 며 오히려 화흠에게 일침을 날린 일화가 있는데, 11살 짜리 어린아이에게 망신을 당한 화흠은 이를 크게 부끄러워했으나 한편으론 어린 나이에 벌써 이만한 두각을 내는 자는 찾아볼 수 없다며 심우를 극찬해 이름이 알려졌다.이미 20살의 나이에 박학해 꿰뚫지 못한 것이 없는데다 글을 잘 지었으며, 군사에 관한 일에도 정통해 손자병법에 주를 달 정도였다. 또한 변론해 말하는 것마다 상대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자마자 반문하니 모두 말문이 막혀 상대하지 못했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심우의 붓, 혀, 칼의 묘함은 보통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경지라 여기며 삼묘라 칭찬하였다.
심우의 명성을 들은 손권이 그를 초빙하자 심우는 왕패의 기략과 당대의 현안에 대해 논의하며 형주를 취해 겸병해야 함을 진언해 손권이 이를 받아들였으나, 심우는 얼굴 빛을 바로하고 바른말을 하는데다 풍채가 준려해 용렬한 신하들과 크게 달랐으므로 마침내 모반했다고 무고되었다.
손권은 심우의 재주가 빼어남을 꺼렸고, 끝내 심우가 자신을 위해 쓰이지 않을 것이라 여겨 부하들을 모아 연회를 여는 자리에서 심우를 붙잡아 끌어내며 모반을 꾸미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심우는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반역자는 주상(= 헌제)께서 허도에 계시는데도 무군지심을 품고 있는 손권 당신이 아닌가." 는 말로 손권을 욕하며 죽었으며, 향년 29세였다.
모함을 받았다는 서술로 봤을때 심우가 정말로 반란을 꾸몄다기 보다는 반란을 빌미로 손권에게 숙청당한 것에 가깝지만, 심우의 최후 발언과 심우가 끝까지 자신을 위해 일하지 않을 것이라 여긴 손권의 판단을 봤을때, 심우는 강동 지역을 무력 점거한 군벌 손권이 아니라 허도의 황제[2]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시 중앙조정은 손권을 정식 회계태수, 토로장군으로 삼는 등 표면적으로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실상은 독립세력에 가까웠고 손권 본인도 할거를 추구했으며, 심우의 최후 발언은 그 본질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손권으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반대파인 데다 명망이 높고 지나치게 유능하기까지 한 심우와 양립할 수 없었던 것. 중앙정부를 구심점으로 삼던 심우의 입장에서도 손권과 양립하긴 어려웠으니 결국엔 반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1]
<오주전>의 주석 위치는 204년에
손익이 살해당한 기록 아래에 위치하므로 손익의 죽음과 비슷한 시점에 죽은 것으로 보이며 《
건강실록》에서도 204년의 일로 적고 있다.
[2]
조조가 사실상 모든 권력을 장악해 헌제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과는 별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