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경방(景方) |
출생 | 1859년 2월 25일 |
경상도
청송도호부 부서면 하덕천동 (현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하덕천마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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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03년 5월 21일 (향년 44세) |
경상북도 청송군 | |
본관 | 청송 심씨[2] |
상훈 |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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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1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심성지는 그의 아버지이며, 독립유공자 심능규는 부인 의성 김씨(1854 ~ 1926. 7. 15)[3]의 외사촌 오빠이다.
2. 생애
1859년 2월 25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부서면 하덕천동(현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하덕천마을)에서 청송의진 의병대장인 아버지 심성지와 어머니 함안 조씨(1823 ~ 1898. 10. 2) 조승욱(趙升煜)의 딸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자식 없이 요절한 5촌 당숙 심강지(沈岡之, 1814 ~ 1843. 5. 21)에 입양되었다.그는 1896년 1월 안동부 청송군에서 아버지 심성지가 의진을 결성하고 의병대장에 추대되자, 의진에 입대하고 자제군관(子弟軍官)에 선임되었다. 그해 2월 참모 겸 사병도총(司兵都摠)이었던 남승철과 함께 의병을 사칭해 민폐를 끼치는 자들을 처단하는 데에 일조했다.
그해 4월 심성지 의진이 김하락 의진, 김상종(金象鍾) 의진과 연계 하에 의병 활동을 할 때 참전했다가, 현내면 감은동(현 안덕면 감은리) 뒷산 기슭에서 일본군과 마주쳐 교전 끝에 병사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는 데 일조했다.
그 뒤 부동면 상평동(현 주왕산면 상평리) 마평(馬坪)과 경주군 등지에서 교전하였지만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고, 얼마 뒤에 좌익장 권성하 등과 함께 영덕의진을 지원하기도 했으나 곧 해산되었다.
의진이 해산된 뒤에는 청송군에서 은거하다가 1903년 5월 21일 별세했다.
200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