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탁법에서 말하는 신탁이란?
이 법에서 “신탁”이란 신탁을 설정하는 자(이하 “위탁자”라 한다)와 신탁을 인수하는 자(이하 “수탁자”라 한다) 간의 신임관계에 기하여 위탁자가 수탁자에게 특정의 재산(영업이나 저작재산권의 일부를 포함한다)을 이전하거나 담보권의 설정 또는 그 밖의 처분을 하고 수탁자로 하여금 일정한 자(이하 “수익자”라 한다)의 이익 또는 특정의 목적을 위하여 그 재산의 관리, 처분, 운용, 개발, 그 밖에 신탁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행위를 하게 하는 법률관계를 말한다.이를 거칠지만 보다 직관적이고 쉽게 말하면, 자신(위탁자)이 소유한 특정의 재산(신탁재산)을 다른 사람(수탁자)에게 넘겨주어(처분. 소유권의 이전이 그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재산을 어떤 목적을 위해 적절히 관리하거나 운용하여 그로부터 수익을 발생시키도록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신탁법상 신탁은 분업과 전문성이 고도화된 현대사회에서 자주 활용되고 있는데, 흔한 예시로 재건축사업의 경우 조합원의 토지등 부동산을 재건축 조합에 신탁하는 것과, 자산유동화를 위하여 재산을 신탁하고 그로 인한 수익권을 증권화하여 매각하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甲이 자신이 소유한 빌딩X의 소유권을 부동산 관리 업체인 乙에게 이전하고 乙로 하여금 빌딩X를 임대주어 적절히 수익을 내도록 맡기는 것이 바로 신탁법상 신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여기서 甲은 위탁자가 되고, 乙은 수탁자가 되며, 빌딩X는 신탁재산이 된다. 그렇다면 이때 乙이 빌딩X를 임대주어 얻은 수익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이에 따라서 "자익신탁"과 "타익신탁"이 구분된다. 먼저 자익신탁은 위탁자와 수익자가 동일인인 경우에 해당하는데, 위 예시의 경우 위탁자인 甲이 빌딩X로부터 乙이 얻은 수익을 누리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만일 甲이 乙과 자신의 미성년자인 아들 丙을 위하여 빌딩X로부터 임대수익을 얻어 丙에게 전달할 것 내용으로 하는 신탁계약을 체결한 경우[1]는 어떤가? 위탁자인 甲은 자신의 재산인 빌딩X를 수탁자인 乙에게 처분했지만, 그로 인한 수익은 자신이 아닌 아들 丙에게 돌아간다. 이처럼 위탁자와 수익자가 분리되는 형태의 신탁을 "타익신탁"이라 한다. 이외에도 신탁의 목적에 따라 공익신탁과 사익신탁, 생전신탁과 유언신탁, 임의신탁과 법정신탁 등으로 구분될 수 있지만, 자익신탁과 타익신탁의 구분이 가장 기초적인 구분이라 하겠다. 또한 특정한 수익자가 없는 목적신탁(신탁법, 이하 '법' 제3조 제1항 단서)이라는 제도도 있지만, 실제로 그다지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또한 위탁자가 수탁자의 지위를 겸할 수도 있는데, 이를 '신탁선언'이라 한다. 이러한 신탁선언은 자기 자신이 위탁자가 되고 또 동시에 수탁자가 되기 때문에 위탁자와 수탁자가 분리되는 일반적인 신탁과는 달리 합의(계약)가 아닌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로 설정된다는 특색이 있다. 다만, 신탁재산은 재단법인의 재산처럼 위탁자의 고유재산으로부터도 수탁자의 고유재산으로부터도 분리/독립되어 다루어지고, 따라서 위탁자의 일반채권자나 수탁자의 일반채권자도 신탁재산에 대하여 강제집행할 수 없기 때문에[2], 동일인이 위탁자 겸 수탁자가 되는 신탁선언의 경우 집행면탈을 위한 목적으로 신탁제도를 남용할 위험이 있어 더 강도 높은 규제가 적용된다(법 제3조 제2항, 제3항).[3]
2. 민법상 신탁과의 차이
민법상의 신탁은 일반적으로 특정 목적을 위하여 신탁자의 특정 재산을 수탁자에게 이전하지만, 대내적으로는 그 권리 이전이 발생하지 않고, 대외적으로만 발생하여 대내적 권리와 대외적 권리가 분리되는 모습을 띈다. 가령 신탁자 甲이 부동산X를 수탁자 乙에게 민법상 신탁으로 이전하는 경우, 乙은 부동산X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받지만, 甲과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甲이 소유자로 여겨지며, 甲과 乙이외의 제3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乙이 부동산X의 소유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민법상 신탁의 예로는 추심을 위한 채권양도를 들 수 있다. 이는 신탁자가 수탁자로 하여금 단지 자기가 보유한 채권의 추심을 위임하기 위하여 그 목적 범위 내에서 채권을 수탁자에게 이전하는 것이다. 반면 신탁법상 신탁은 이처럼 대내외적 소유권이 분리되지 않고 일체로서 완전히 수탁자에게 이전된다. 따라서 위탁자와 수탁자와의 사이에서도 수탁자는 신탁재산에 대해 완전한 소유권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위탁자 甲이 부동산X를 수탁자乙에게 신탁법상 신탁으로 이전하는 경우, 민법상의 신탁과는 달리 위탁자인 甲도 수탁자인 乙에 대하여 부동산X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민법상의 신탁 중 부동산 명의신탁이 가장 현저하게 문제되는바, 이하에서는 부동산 명의신탁과 신탁법상 신탁의 차이에 대해 좀 더 살펴본다.2.1. 부동산 명의신탁과의 차이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실명법')"에서의 명의신탁이 민법상 신탁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인 만큼 명의신탁과 신탁법상 신탁법 사이의 관계가 문제된다. 명의신탁은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의 관계, 즉 대내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명의신탁자가 소유권을 보유하고 명의수탁자는 소유권을 보유하지 못 하는 반면, 명의수탁자와 제3자와의 관계, 즉 대외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명의수탁자가 소유권을 보유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신탁자-명의수탁자 사이의 대내적 소유권과 명의수탁자-제3자 사이의 대외적 소유권이 분리되는 성질을 지닌다는 것이다. 따라서 명의수탁자의 경우 명의신탁자에 대하여 명의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4][5]반면 신탁법상 신탁의 경우 대내외적으로 소유권을 완전히 수탁자가 취득하지만, 수탁자는 신탁의 목적과 신탁상 정함에 따라 신탁재산을 사용, 수익, 처분할 의무를 지님으로써, 신탁의 목적에 따른 제한을 받게 된다. 따라서 신탁계약의 효력이 지속되는 한, 위탁자는 수탁자에 대하여 수탁자에게 처분한 신탁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게 된다.
3. 국내 문헌
비교적 최근까지도 국내에서 신탁법에 대한 연구나 저술활동이 활발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교과서나 연구문헌 등 국내 문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신탁법의 연구 문헌이자 교과서를 꼽으라고 한다면,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최수종 교수의 『신탁법』을 들 수 있고[6], 신탁법의 입문서로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오영걸 교수의 『신탁법』이 있고[7], 실무서이자 연구총서로는 광장신탁법연구회가 발간한 『주석 신탁법』정도가 있다.[8]
[1]
미성년자인 丙이 빌딩X를 직접 증여받는다고 해도 그가 직접 빌딩X를 적절히 사용수익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2]
신탁 전의 원인으로 발생한 권리 또는 신탁사무의 처리상 발생한 권리에 기한 경우에는 신탁재산에 대하여 강제집행이 가능하다(법 제22조 제1항 단서). 가령 수탁자가 신탁사무처리를 위하여 제3자에게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 제3자는 신탁채권자에 해당하여 신탁재산에 대해서도 당연히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또한 가령 위탁자의 부동산에 대하여 신탁이 설정되기 이전부터 저당권을 갖고 있던 제3자는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이 신탁재산으로 수탁자에게 이전되더라도 저당권자는 해당 저당권을 여전히 실행할 수 있다.
[3]
제3조(신탁의 설정) ① 신탁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설정할 수 있다. 다만, 수익자가 없는 특정의 목적을 위한 신탁(이하 “목적신탁”이라 한다)은 「공익신탁법」에 따른 공익신탁을 제외하고는 제3호의 방법으로 설정할 수 없다. <개정 2014. 3. 18.> 1. 위탁자와 수탁자 간의 계약 2. 위탁자의 유언 3. 신탁의 목적, 신탁재산, 수익자(「공익신탁법」에 따른 공익신탁의 경우에는 제67조제1항의 신탁관리인을 말한다) 등을 특정하고 자신을 수탁자로 정한 위탁자의 선언 / ②제1항제3호에 따른 신탁의 설정은 「공익신탁법」에 따른 공익신탁을 제외하고는공정증서(公正證書)를 작성하는 방법으로 하여야 하며, 신탁을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을 유보(留保)할 수 없다.<개정 2014. 3. 18.> / ③ 위탁자가 집행의 면탈이나 그 밖의 부정한 목적으로 제1항제3호에 따라 신탁을 설정한 경우 이해관계인은 법원에 신탁의 종료를 청구할 수 있다. / ④ 위탁자는 신탁행위로 수탁자나 수익자에게 신탁재산을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신탁재산을 특정할 수 있다. / ⑤ 수탁자는 신탁행위로 달리 정한 바가 없으면 신탁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수익자의 동의를 받아 타인에게 신탁재산에 대하여 신탁을 설정할 수 있다.
[4]
가령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부동산을 점유 및 사용수익하고 있는 명의신탁자에 대하여 소유권에 기한 반환청구권을 행사하거나 임료상당액의 (침해)부당이득반환청구 및 소유권 침해에 대한 불법행위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는 없다. 반면 명의신탁자는 명의수탁자에 대하여 물권적 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5]
현재는 실명법에 따라 명의신탁약정은 무효이며, 이에 기한 물권변동 또한 무효이기 때문에 명의신탁약정을 맺고 부동산의 등기를 명의수탁자에게 이전하였어도 소유권 이전의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6]
목차의 체계정합성이 높고, 관련 판례와 학설 및 저자의 검토 의견을 적절한 수준에서 소개하고 있으며, 아울러 외국의 입법례와 학설도 장황하지 않은 수준에서 적절히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7]
신탁법의 조문 순서 및 법률의 체계와 책의 목차가 일치하지는 않아 체계정합성은 낮은 편이나, 오히려 그렇기에 초심자가 접근하기에는 더욱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8]
이외에도 정순섭, 유동규, 임채웅 등이 집필한 신탁법 문헌들이 존재하지만, 그 수가 극히 적고 비교적 최근까지 개정판이 출시되고 있는 교과서는 상기 3개의 문헌 이외에는 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법학문헌의 공급은 가장 첫번째로는 구사법시험 및 현변호사시험 등 각종 국가고시의 시험과목으로 채택된 법률분과를 다루는지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고, 둘째로는 해당 법률분과가 실무상으로 자주 복잡한 쟁점으로 이용되는지에 영향을 받는다고 볼 것인데, 신탁법의 경우 변호사시험을 포함한 모든 국가고시에 시험과목 내지는 시험범위로 포함되지 않으며, 또 영미법계와 달리 우리법제 하에서는 신탁이란 제도 자체가 굉장히 생소하여 거래의 실제이 있어 다른 민사법제도에 비하여 그다지 많이 쓰이지는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수험가와 실무계 모두에서 수요가 많지 않으니 신탁법에 관한 문헌의 공급도 자연히 적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