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00:02:01

신일본 암흑사천왕


신일본 암흑사천왕
혼마 토모아키 밀라노 콜렉션 A.T. 이시이 토모히로 타이치


[ruby(新日本, ruby=しん に ほん)] [ruby(暗黒, ruby=あんこく)][ruby(四天王, ruby=し てんのう)]
1. 개요2. 상세

1. 개요

2019년 6월, 이시이 토모히로와 대립 중이던 타이치가 명명했으며,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최대 위기 시절로 있는 선수들조차 다 나가던 암흑기 중 암흑기인 2000년대 중후반에 오히려 타단체에서 신일본으로 이적해 와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4인을 말한다.

2. 상세

2000년대 초, 일본 부동의 프로레슬링계 1위 단체였던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창립자 안토니오 이노키는 이미 많은 실전주의 프로레슬링 팬들이 Pride 등 종합격투기계로 빠져나간 와중 본인이 신봉하던 '프로레슬링 최강론'에 의거하여 하루가 다르게 창의적인 오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일본 부동의 1위 단체 신일본의 메인 이벤터인 프로레슬러 나가타 유지를 2001년 12월 31일에 한번(vs 미르코 크로캅), 2003년 12월에 한번(vs 표도르 예멜리야넨코) 종합격투기의 규격 외 괴물들에게 손발 한 번 못 써보고 개작살이 나게 만들어 프로레슬러의 체면을 땅바닥으로 쳐박게 만든 이노키가 이후 제롬 르 밴너에게 뽀록승을 거뒀다고 프로레슬러로는 삼류였던 야스다 타다오에게[1] 단체 최고 벨트인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벨트를 던져주거나, 아예 프로레슬링과는 관련조차 없던 밥 샙에게 이 벨트를 던져주는 등[2] 업계의 맹주 신일본을 암흑의 구렁텅이에 쑤셔넣자, 2000년에 세워진 신생 단체 프로레슬링 NOAH가 몇 년도 안 되어 업계 1위를 가져가는 등[3] 프로레슬링판의 파이 자체가 극도로 축소되었다.

Pride가 2006년부터 시작된 자금난으로 도산한 이후에도 UFC로 팬들이 흡수되었기 때문에 프로레슬링을 사람들이 볼 이유는 여전히 없었고, 암흑기가 끝을 모르고 길어지자 미래가 없어져가던 신일본 소속 프로레슬러들조차 단체를 떠나가기 시작했다.[4]

이렇게 많은 이들이 떠나가는 와중에도 오히려 신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주 전장을 옮겨 나날히 부족해져가는 로스터 속에서도 분발하던 4명이 있는데, 2006년 6월 WJ에서 초슈 리키의 리키프로로 옮겨 신일본에 참전한 이시이 토모히로, 같은 해 말 미래가 좀 더 없던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건너온 타이치, 대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건너온 혼마 토모아키, 그리고 2008년 1월 드래곤 게이트에서 건너온 밀라노 콜렉션 A.T. 이 4명이었다.

이 중 밀라노 콜렉션 A.T.가 2009년 9월 경기를 마지막으로 부상이 재발하며 일찌감치 은퇴하였지만 이후 신일본 메인 해설자로 변신하여 오랫동안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이시이 토모히로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브롤러로, 혼마 토모아키가 2017년 3월 경추 부상 이후 몸 문제로 톱 전선에서 밀려났으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언더독으로 성장하여 둘 다 레인메이커 쇼크 이후 부활한 신일본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줬으며, 오랜 기간 헤매던 타이치조차 2019년 이후 경기력이 급성장하며 신일본 하이 미들의 일각을 차지하게 되면서 타이치가 블로그에 썼던 표현일 뿐이었던 '신일본 암흑사천왕'이라는 표현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2019년 6월 3일,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26 기간 도중 이시이 토모히로와 태그 팀으로 맞붙게 된 타이치가 경기 이후 백스테이지 코멘트에서 '암흑사천왕 중 하나(밀라노)는 해설자, 하나(혼마)는 몸이 좀 그렇지만 둘은 남아있다. 암흑사천왕 둘이서 톱을 정하자'라는 말로 처음으로 암흑사천왕이라는 표현을 마이크웤으로 썼으며, 이후 굳어져 당시 꿈도 희망도 없던 신일본을 기억하는 올드 팬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쓰이게 되었다.
[1] 스모 출신 프로레슬러로 과거 신일본은 요코즈나 출신인 키타오 코지를 데려왔다가 크게 데인 후로 키타오의 동기 야스다를 데려오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써먹기 위해 빡세게 훈련을 시키긴 했지만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과거 스모 시절 장기인 하리테로 상대를 턴버클로 미는 기술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다시피하는 등 프로레슬러로서 재능은 빵점에 도박으로 빚까지 지는 등 사생활도 영 아니었다. [2] 다만 밥 샙은 쇼맨십이나 마이크워크같은 점에서 격투기보다는 오히려 프로레슬링에 더 재능이 있었고 이후로도 프로레슬링 흥행에 몇 번 참여했다. [3] 물론 당시 NOAH는 전일본의 사장 미사와 미츠하루를 비롯해 대다수의 전일본 선수들이 이적해왔기 때문에 사실상 전일본이 통째로 옮겨온 거나 다름없는 단체였다. 자세한 건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 참조. [4] 다만 이런 삽질은 결국 안토니오 이노키가 쫒겨나고물러나고 부시로드가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인수하고 타나하시 히로시, 나카무라 신스케, 시바타 카츠요리같은 신 투혼 삼총사가 등용하면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