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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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의 인물.2. 생애
1010년에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면서 제2차 여요전쟁을 일으켰고, 12월 초에 통주 전투의 패배로 고려군이 무너지면서 김훈, 김계부, 이원과 함께 곽주로 후퇴하다가 거란의 기병이 추격하자 완항령에서 군사를 매복해 칼을 손에 쥐고 돌격해 거란군을 약간 물러나게 했다.거란군이 곽주를 공격하자 승이인, 대회덕, 이용지, 간영언과 함께 맞서 싸웠지만 전사했고 곽주성은 함락되었다.
1011년 4월 13일에 고려 조정에서 전사한 집에 쌀과 베를 내려주면서 신영한의 유족은 채온겸, 원태, 최원, 승리인, 유인택의 유족들과 함께 쌀과 베를 차등있게 하사받았다.
3. 대중매체
소설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에서는 통주 전투가 패배하면서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안소광의 명령으로 곽주로 퇴각했고, 거란군의 추격을 받았고 이원이 오자 기군과 초군 일부를 매복시켜둔 것을 말하면서 나머지 기군과 초군의 후퇴를 돕다가 적당한 시점에 뒤쪽으로 후퇴하라고 명령했다.거란군을 여러 차례 기습했지만 화살이 떨어지자 지형을 살펴보면서 사기를 복돋기 위해 노래를 불렀고 병사들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완항령에서 거란군을 물리쳤지만 전투 도중에 가슴에 화살 한 방을 맞고 부상을 입자 이원에게 지휘를 맡기고 들것에 실려 곽주로 갔다.
곽주에서 거란군을 막을 준비를 하는데, 조성유가 적정을 직접 정탐한다는 보고를 받자 조성유가 도망간 것임을 짐작하고 간영언에게 방어사를 맡게 했다. 간영언이 군사에 대해 모르기에 간영언 곁에서 방어사 역할을 했고, 갈비뼈가 아픈 상황에서 거란군과 싸우다가 통증으로 움직임이 멈춘 사이에 머리를 철퇴에 맞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