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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호/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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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시절과 학창시절2. 대학시절과 군복무3. 교사시절

1. 어린시절과 학창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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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신경호. 가장 왼쪽이 신경호(좌측 이미지).
강원도교육감 후보 신경호는 1952년 음력 12월 7일 홍천 서면 반곡리, 아버지 신훈식과 어머니 유병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때 임관한 직업군인이신 아버지께서는 자주 거주지를 옮기셨고 이에 6살 때 부모 곁을 떠나 춘천 남산면 창촌리의 외갓집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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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시절 신경호. 왼쪽이 신경호(좌측 이미지). 두번째가 신경호(우측 이미지).
남산초등학교에서는 전교 어린이회장을 하였고 학교를 대표하여 웅변대회, 주산대회, 모형글라이더대회 등에 참가했다. 4학년 때부터 농촌 봉사활동을 온 서울 덕수상고 형들에게 주산을 배웠는데 그 덕분에 숫자를 다루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산초등학교를 37회로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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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시절 신경호. 네번째가 신경호(우측 이미지).
창촌중학교에서도 전교 학생회장을 하였고, 2학년에는 정구부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선생님께서 사주시던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였지만 도 대회에 학교 대표로 입상한 것을 계기로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도 정구선수로 활동하였다. 그 인연은 현재까지도 강원도족구협회 고문 및 강원도소프트테니스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창촌중학교는 13회로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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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시절 신경호. 우측 위가 신경호(가운데 이미지).
춘천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고등학교시절부터는 아버지께서 인근 부대로 근무지를 옮기신 덕분에 가족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고2 학년말에 아버지께서 전역하신 뒤부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강직한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었다.

2. 대학시절과 군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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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졸업사진. 강원대학교 수학교육학을 전공하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국비로 공부할 수 있는 해양대학교 항해과에 지원지원했지만, 결국 합격한 곳은 선생님의 권유로 지원한 강원대학교 수학교육과였다. 숫자를 다루는 직업이라는 꿈에도 맞고, 무엇보다 나중에 펼쳐질 38년 5개월 교육직 경력의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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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복무시절 신경호. 왼쪽이 신경호(가운데 이미지). 임관식 도중(우측 이미지).
강원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학군단에 입교하여 학업과 군사교육을 병행하였다. 졸업한 뒤 1974년 2월 육군소위로 임관하며 성적우수 육군참모총장상을 수상했다. 이후 2년 4개월 동안 철원에서 관측장교 및 전포대장으로 성실히 복무했다.

3. 교사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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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시절 신경호.
교직생활의 시작은 76년 10월 4일, 삼척 도계여자중학교의 수학교사였다. 이후 78년부터 86년까지 홍천농고 및 홍천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부터는 홍천 JC에서 활동하여 지금까지도 각종 행사에 왕래하며 연을 맺고 있다. 그렇게 다양한 학교[1]에서 다양한 아이들을 맡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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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호와 아내.
교직생활 도중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강원대학교 계절제 교육대학원 1기로 들어가 수학교육전공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79년에는 지금의 소중한 반려자를 만나 춘천 세종호텔에서 결혼하였다.

2003년부터는 정선 나전중학교에서 교감을 맡았다. 전교생이 7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였다. 그런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장점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고 다행히 당시 학교장과 뜻이 잘 맞았다. 모든 선생님들이 관사 생활을 했기에 학생들과 긴밀히 연결된 교육이 가능했고 자주 가정에 방문하여 부모님, 조부모님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귀가가 늦어지는 학생들은 직접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2004년에는 학교 내 모두가 꿈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에서 학교 일동이 모여 타임캡슐[2]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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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장 근무시절 신경호.
2007년부터는 횡성 안흥중·고등학교에서 교장을 맡았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규모가 작은 학교라, 아이들의 안정적인 학습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스스로가 솔선수범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여 사비를 털어 관사를 학생 기숙사로, 폐창고를 교사 휴게동으로 바꾼 일화도 있다. 환경이 갖추어지니 교육열이 올라가고, 의욕이 생기니 각종 동아리 및 스터디그룹도 활성화되어 다양한 성과를 올렸다. 그러한 기여를 인정받아 2009년 한국사도대상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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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장 근무시절 신경호.
2011년부터는 춘천교육지원청에서 춘천교육장으로 근무했다. 의례적으로 이루어지던 월례조회를 판소리, 리코더, 색소폰 연주단 등으로 꾸미고, 생일을 맞은 직원들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등 여러 이색적인 이벤트들을 기획하기도 했다. 학부모의 학습 참여가 제한되는 가정을 위하여 다양한 분야의 학부모 대상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했다.

2013년에는 춘천의 신포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학생이 서른 명인 작은 학교였다. 마지막 교육직인데 좀 더 편한곳으로 갈 수 있었으나, 작은 학교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신포중학교로 부임했다. 지역 합동음악제를 열어 학생들의 기량을 뽐낼 수 있게 해주었고, 학교에서 기른 닭으로 요리를 만들어 지역 노인센터에 봉사활동을 나가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역 공동체 및 공공기관과 연계한 다양한 행사를 유치하여 학생들에게 폭넓은 장을 마련하였다. 그 뒤 2015년에는 따로 퇴임식 없이 정년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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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6~1978 삼척 도계여자중학교, 1978~1983 홍천농업고등학교, 1983~1986 홍천고등학교, 1986~1991 태백 상장중학교, 1991~1998 춘천 소양중학교, 1998~1999 춘천중학교, 1998~2003 화천 사내고등학교, 2003~2003 원주 북원여자중학교 [2] 타임캡슐은 오는 2024년 8월 한가위에 열릴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