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시르한 시르한 Sirhan Sirhan | سرحان سرحا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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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1] Sirhan Bishara Sirhan سرحان بشارة سرحان |
출생 | 1944년 3월 19일 ([age(1944-03-19)]세) |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예루살렘 | |
국적 |
[[요르단| ]][[틀:국기| ]][[틀:국기| ]] |
종교 | 개신교 ( 침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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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르단의 인물. 로버트 F. 케네디 암살 사건의 범인으로 유명하다.2. 생애
시르한 시르한은 1944년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으며 4살 때 제1차 중동전쟁이 일어나 집이 폭격을 받고 친척 중 일부를 잃기도 했는데 그의 어머니에 따르면 이것이 어린 시르한에게 PTSD와 정신적 상해를 남겼다고 한다. 시르한 시르한의 가족은 12살에 전쟁으로 불안정한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떠나 뉴욕에 정착했는데 고정된 수입원이 없어 일용직을 전전했고 이와중에 마구간에서 일하다가 말발굽에 머리를 맞아 크게 다치기도 했다. 이름과 출신 성분 때문에 무슬림으로 종종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침례교를 믿었다고 한다.시르한 시르한은 어릴 때 전쟁의 충격과 선천적인 정신병 등으로 인해 편집증 증세를 보이고 있었는데 20대의 나이로 팔레스타인에 방문해 이스라엘 건국을 옹호하고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발언을 한 로버트 F. 케네디를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의 원흉으로 생각해 유독 증오하였다.[2] 경찰에 의해 발견된 시르한 시르한의 수첩에 "로버트 케네디는 죽어야 한다"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이 일어나자 시르한의 반시오니즘, 반이스라엘, 로버트 케네디에 대한 증오는 커졌고 그때부터 암살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된다.
1968년 6월 4일 시르한 시르한은 몰래 구한[3] 리볼버를 들고 앰배서더 호텔로 향해 케네디를 은밀하게 뒤쫓았다. 6월 5일은 제3차 중동전쟁이 일어난지 1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의미도 컸다. 시르한 시르한은 사설 경호원들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재빠르게 로버트 케네디에게 접근해 걸어가면서 케네디에게 리볼버를 난사했는데 몇 분 후 경호원과 지지자에게 제압되었고 LAPD에 의해 구속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시르한 시르한은 재판 중에 자신이 했던 말을 계속 뒤집고 누군가 세뇌를 통해 자신에게 케네디 암살을 사주하도록 했다고 하는가 하면 이스라엘 건국 이후 계속 케네디를 증오했고 그 계획을 실천했다는 모순된 증언만 내놓았다. 전문적인 프로파일러들은 그가 전형적인 편집증 증세를 앓고 있으며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검사 측은 시르한 시르한이 일단 최소 3주 전부터 총기를 구입하고 로버트 케네디의 유세 장소를 따라다니는 등 계획적인 범죄 정황이 발견되어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판사도 이를 받아들여 정신병을 토대로 선처를 요구하던 변호인의 요구를 기각하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72년 캘리포니아 주법에서 사형제가 폐지되자 그는 사형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4] 시르한 시르한은 감옥에서 자신의 진술을 뒤바꾸는 등의 행동으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나 최근에는 일관되게 자신의 범행을 알코올 중독과 어릴 적의 트라우마가 겹친 것의 영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감옥에 수감된 후 17번이나 가석방 신청을 냈고 그 중 가장 가석방에 가까웠던 사례는 2022년이었다. 시르한 시르한은 가석방 위원회에 의해 상당히 태도가 개선되었기 때문에 가석방을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개빈 뉴섬 주지사는 자신의 직권으로 시르한 시르한이 범행을 반성하지 않고 있고 범행 자체도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석방될 수 없다는 이유로 가석방 신청을 기각했다. 가장 최근의 요청 사례인 2023년 3월 1일 가석방 요청은 위원회 선에서 컷당했다. 시르한 시르한은 82세가 되는 2026년에 다시 가석방을 신청할 자격을 얻게 된다.
로버트 케네디의 자식 중 케네디 암살 음모론을 믿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가석방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8년 감옥에서 시르한 시르한을 접견한 후 시르한의 눈에서 진실을 보았으며 자신의 음모론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했으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그에 비해 비교적 정상적으로 정계에서 활동 중인 손자 조 케네디 3세는 시르한 시르한의 가석방에 반대하고 있다.
3. 여담
- 팔레스타인계 요르단인임과 동시에 무슬림이 다수인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 권역에서 소수에 해당하는 기독교인이다.
[1]
영어식으로 "써한 써한"이라고 쓰기도 한다. 한국에서 조금 옛날에 나온 책은 대부분 서한 서한이나 써한 써한 같은 표기를 따르고 있다.
[2]
그는 로버트 케네디가 이스라엘에 전투기 50대를 지원했다고 생각했다. 메모장에서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문구가 발견되었으나 그가 공산주의자인지는 불명확하다.
[3]
시르한 시르한은 요르단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총기를 구할 수 없었다.
[4]
찰스 맨슨도 같은 이유로 사형을 피했다.